-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도창동인 인천부 전반면(田反面)에 묘소가 있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시회(時會), 호는 석담(石潭)이다. 아버지는 사어(司禦) 권근중(權謹中), 할아버지는 예조 판서 권협(權悏),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권상(權常)이다. 어머니는 이유혼(李幼渾)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에 태어난 권대운(權大運)[1612~1699]은 1642년...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상(伯常)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권순창(權順昌)이고,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권경기(權儆己)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권세경(權世經)[1626~1704]은 1648년(인조 2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6년(현종...
-
묘소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 또는 허주자(虛舟子),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김구(金構), 할아버지는 김징(金澄)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극형(金克亨)이다. 어머니는 돈녕도정을 지낸 이몽석(李夢錫)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치인(金致仁)이다. 김재로(金...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길(重吉)이고, 호는 추곡(楸谷), 송림(松林)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순(金峋)이며,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선경(金善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구이다. 어머니는 부호군(副護軍) 한광윤(韓匡胤)의 딸이고, 부인은 나주 정씨로 정언규(丁彦珪)의 딸이다. 아들은 김방(...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었던 학산 서원에 배향된 이단상(李端相) 문하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또는 삼주(三洲)이다. 시호(詩號)는 문간(文簡)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문충공 김수항(金壽恒),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광찬,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문정공 김상헌(金尙憲)이다. 어머니는 안정 나씨(安定羅...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박권(朴權)[1658~1715]는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문신으로 1699년(己卯) 4월 10일에 인천으로 부임하여 7월 23일까지 인천 부사를 역임했고, 1712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획정 때 조선 측 대표인 접반사(接伴使)로 활약했다. 본관이 밀양(密陽)이며, 자는 형성(衡聖), 호는 귀암(歸庵)...
-
조선 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자는 치도(致度)이다. 아버지는 서문하(徐文夏)이고, 어머니는 정이화(鄭以和)의 딸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서종헌(徐宗憲)[1656~1712]은 1678년(숙종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0년 정시(庭試) 병과(丙科) 5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숙부 서문중(徐文重)과...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여승(汝承)이다. 고려 시대 명신인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조 판서를 지낸 이경징(李慶徵), 아버지는 통덕랑을 역임한 이인식(李寅烒), 어머니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의 딸 여흥 민씨이다. 이성곤은 윤두수의 후손인 해평 윤씨와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부평 이씨 출신의 문신. 자는 숙필(叔弼), 호는 철애(鐵厓)이며,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계록(李繼祿), 할아버지는 이덕일(李德一), 아버지는 이홍재(李弘載)이다. 이세익(李世翊)[1626~1705]은 조선 인조(仁祖)에서 숙종(肅宗)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으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수(汝守)이다. 이태구의 증조할아버지는 종친(宗親)[임금의 친척]인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이고, 할아버지는 이정방(李庭芳)이다. 아버지는 이민정(李敏政)이며, 어머니는 한득일(韓得一)의 딸이다. 이태구(李泰龜)[1636~1724]는 1676년(숙종 2) 정시 문...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윤(景尹)이다. 아버지는 이항복(李恒福)의 증손인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이세필(李世弼)이고, 어머니는 예조 참판을 역임한 박세모(朴世模)의 딸 반남 박씨이다. 이형좌(李衡佐)[1668~?]는 1702년(숙종 28)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관(蔭官)으로 출사하였다. 영...
-
조선 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내지(來之)와 대숙(大叔)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한 정수(鄭脩)이고, 어머니는 김계(金啓)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역임한 유심(柳淰)의 딸 전주 유씨(全州柳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윤징문(尹徵文)...
-
조선 후기에 현재의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연일 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순년(舜年), 호는 곡구(谷口)이다. 정시성(鄭始成)의 손자이자, 정인빈(鄭寅賓)의 아들이다. 아들로는 우의정을 역임한 정우량(鄭羽良)과 좌의정을 지낸 정휘량(鄭翬良) 등이 있다. 정수기(鄭壽期)[1664~1752]는 1699년(숙종 25) 36세 되던 해에...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집경(集卿), 호는 만의당(晩依堂)이다. 증조는 효릉 참봉(孝陵參奉) 증좌통례(贈左通禮) 정제(鄭濟)이며, 조부는 증승정원 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정여온(鄭汝溫)이다. 증의정부 좌참찬(贈議政府左參贊) 정용(鄭涌)과 신계(新溪) 현령(縣令) 이중기(李重基)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압해(押海)이며, 자는 사원(士元), 호는 덕암(德巖)이다. 강원도 관찰사 정윤희(丁胤禧)[1531~1589]의 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정호경(丁好敬), 할아버지는 정언규(丁彦珪)이다. 가평 군수를 지낸 정시걸(丁時傑)과 이정방(李廷芳)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는 홍구소(洪九韶)의...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이 양주(楊州)이며, 자 낙보(樂甫)이며, 호는 수와(睡窩)·휴와(休窩),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조계원(趙啓遠)의 증손자이자, 조희석(趙禧錫)의 손자이다. 도정 조태래(趙泰來)와 윤계(尹堦)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는 이세저(李世著)의 딸이다. 조태채(趙泰采)의 조카이며, 형은 조행빈(趙...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정이(定而), 호는 오재(寤齋),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합천 군수 조경망(趙景望)과 유식(柳寔)의 딸 진주 유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로는 조정우(趙正宇), 조정화(趙正華), 조정하(朝正夏) 등이 있다. 아들로는 조명두(趙明斗), 조명익(趙命翼), 조명규(趙明奎), 조명기(趙明箕)가 있다....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이 임천(林川)이며, 자 양경(楊卿), 호 일봉(一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를 역임한 조원(趙瑗)이며, 할아버지는 조희진(趙希進)이다. 마전 군수(麻田郡守)를 지낸 조시형(趙時馨)과 심정양(沈廷揚)의 딸인 청송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형 조원...
-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실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중(士中), 호는 유암(流巖)이다. 아버지는 예조 참의 홍주국(洪柱國)이다. 홍만선(洪萬選)[1643~1715]은 1666년(현종 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2년(숙종 8), 30세에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올라 내직으로는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
조선 후기에 여환(呂還)과 함께 역모를 꾀한 인천 출신 인물. 여환의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주도적 역할을 하여 인천도호부가 인천군으로 읍격이 강등되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가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여환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는 실록의 기사에 황회(黃繪)는 영평(永平)의 지사(地師)라고 나타나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황회는 풍수지리에 근거해 집터나 묏자리 따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