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61
한자 劉曦
영어공식명칭 Yu Hee
이칭/별칭 유희(劉羲),유의(劉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정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152년 - 유희 어시에 장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152년 - 유희 밀성군수 부임
부임|활동지 밀성군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충주
대표 관직 밀성군수

[정의]

고려 전기 밀성군수를 지낸 문신.

[가계]

유희(劉曦)[?~?]는 본관이 충주(忠州)이며 아들은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유충기(劉沖基)인데, 그 밖의 가계에 대하여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아들인 유충기는 행동거지가 고결하고 문장이 풍성하여 아버지의 풍모가 느껴졌다고 한다. 고려 후기인 고종 때 한림(翰林)의 학자들이 지은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 유희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기록상 이름이 여러 가지로 출현하는데,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에는 ‘유의(劉義)’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선거지(選擧志)」에는 ‘유희(劉羲)’로 기록되어 있고, 아들인 유충기(劉冲基)의 급제 기록, 『고려사(高麗史)』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유희’로 출현한다.

[활동 사항]

고려 전기인 1152년(의종 6) 때 어시(御試)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으며, 1152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해당하는 밀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유희의 생애에 대하여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명환(名宦) 조와 문경현(聞慶縣) 역원(驛院) 조, 『보한집(補閑集)』 「유학사(劉學士)」에 행적이 짧게 전한다. 유희는 1152년에 어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일찍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장원급제는 보통 있는 일이지만, 천자(天子)의 문생(門生)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유희가 급제한 어시는 임금이 직접 주관하는 시험이며 ‘천자의 문생’이라는 구절은 임금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뜻이니, 시를 지어 어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것을 자랑스러워한 것이다. 또한 임금을 ‘천자’라고 표현하여 고려가 스스로 천자국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유희는 중앙 관직을 역임하다가 밀성군수로 좌천되었는데, 밀성으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문경 화봉원(華封院)에 들렀을 때 원 동쪽의 누각과 누각을 지은 자신의 스승 민광문(閔光文)을 칭송하는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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