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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온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E0102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정현

가송리는 천옥과 같은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꾸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곳이다.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마을의 주요 생산물은 담배와 고추이다. 마을 주민들의 성씨를 보면 영양남씨와 봉화금씨가 가장 많고 밀양박씨, 진성이씨, 평산신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 가송에서 행하던 마을굿의 사설에 “송씨(宋氏) 터전에 엄씨(嚴氏) 가족에 금씨(琴氏) 제자”라는 내용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마을에서 그러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각성바지 마을로서 여러 성씨, 여러 출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모듬살이를 형성해 왔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은 혈연적 관계보다는 지연적 관계를 중심으로 마을을 운영해 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품앗이와 계가 발달하면서 각성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노력들을 행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을 공동체 신앙이다. 가송리의 역사는 동제에서 모시는 신격이 공민왕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최소한 고려 후기 이전에 마을이 성립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을굿의 신격이나 전해 오는 내용으로 미루어 공민왕은 이들이 안동이라는 지역적 권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중요한 방패막이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척박한 산간벽촌에서도 그들은 공민왕과의 인연을 650여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것을 끈질기게 붙잡아 마을굿이라는 전통의 맥을 잇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것도 예사인물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가송에서 모시는 신이 그야말로 위대한 인물의 가족임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래 가송에는 별신굿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하회, 수동, 마령동 등과 함께 내륙 별신굿이 안동 지역에서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송에서는 안동 지역의 다른 곳과 달리 정월 대보름 외에 단오에도 마을굿을 벌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단오를 기점으로 성대한 별신굿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 별신굿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현재 가송 마을굿에서 상쇠를 맡아 풍물패를 이끌고 있는 이일영 옹은, 개인적인 정성이든 동신에 대한 믿음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는 동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또한 마을의 화합을 위해서 마을굿을 벌인다고 말했다. 예전에 다리[橋]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격강천리(隔江千里)’라는 말이 있었다. 강 하나가 천리와 같은 거리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를 극복하면서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던 때라도 마을굿을 행하던 가송 주민들에게, 동제는 여러 자연마을을 묶어낼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문화적 장치였던 것이다.

[정보제공]

  • •  이일영(남, 1935년생, 가송리 거주)
  • •  금용극(남, 1939년생, 가송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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