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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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川 康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미상 - 강계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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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4세기 초[추정] - 강계권 입향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13년 - 강계권 사망 |
세거|집성지 | 신천 강씨 집성촌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갈현리 산수동 |
묘소|세장지 | 강순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 |
성씨 시조 | 강지연(康之淵) |
입향 시조 | 강계권(康繼權) |
[정의]
강계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개설]
신천 강씨(信川 康氏)는 강지연(康之淵)[?~?]을 시조로 하고 강계권(康繼權)[?~1413]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강지연은 고려 명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몽골 침략으로 강화로 천도할 때 왕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고 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신성부원군’에서 ‘신성’은 신천의 옛 지명으로 이후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信川)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주요 인물로는 곡산 강씨(谷山 康氏)의 중조(中祖)가 된 강서(康庶)와 재령 강씨(載寧 康氏)의 중조가 된 강득룡(康得龍)이 있다. 고려 충혜왕 때의 강윤성(康允成)은 문하찬성사를 지냈으며, 그 딸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1396]이며 손자가 강순(康純)[1390~1468]이다. 강계권이 충청남도 보령으로 입향하였다.
[입향 경위]
강지연의 8세손 강계권(康繼權)이 아들 강진(康鎭)과 함께 입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영의정(領議政) 강순(康純)이 병조참지(兵曹參知) 유자광(柳子光)[1439~1512]의 무고로 발생한 남이(南怡)[1441~1468]의 옥사[1468년, 예종 즉위년]에 연루되어 사형되면서 강순의 후손들이 보령현을 떠나서 보령 남포현 등지로 옮겨 살았다. 12세손인 강미동(康未同)의 처가도 풍천 임씨로 신천 강씨의 보령 남포현 세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충청남도 보령군 갈현리[현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갈현리] 산수동 일대는 강순 후손들이 300여 년간 동족 마을을 이루며 살아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신천 강씨는 198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강순의 묘역은 역적의 무덤으로 오랜 기간 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묘소 주변에 대천대학[현 아주자동차대학]이 설립되면서 충청남도 보령 역말에서 미산 도흥리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