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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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부평부에서 만든 부평의 고지도.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편찬 지침에 따라 부평부에서 만든 지도이다. 「부평부지도」는 31㎝×41㎝의 크기로 목판본이다. 「부평부지도」의 범위는 오늘날 인천광역시 부평구·계양구·서구의 일부, 부천시, 서울특별시 구로구 일부에 해당한다. 지도에는 읍내의 건물 배치 등은 모두 생략되고 산줄기와 물줄기, 교통로를 중심으로 표시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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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서 장사바위와 관련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기장사바위 설화」는 도당공원 오른쪽 옛 삼양농장 목장지대 안에 있는 장사바위에 서린 이야기와 아기장수 설화가 결합하여 생겨난 자연물 유래담이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아기장수 설화의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한 평민 집안에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고 힘이 센 아기장수였다. 부모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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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까지 경기도 부천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부천 지역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수도 서울과 인접했기에 서울 방어와 탈환을 위한 공방전이 전개된 지역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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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행정구역. 1914년 4월 1일 부평군 지역의 석천면(石川面), 옥산면(玉山面), 수탄면(水呑面)을 통폐합하여 부천군 계남면으로 하였는데, 계남은 1914년에 처음 생긴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미 조선시대인 1700년대부터 현재의 부천 지역에서 ‘계남’이란 이름을 써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구령(李龜齡)[1679~?]은 자신의 문집인 『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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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부천의 옛 이름. 계양은 계수나무를 뜻하는 ‘계’자와 회양목을 뜻하는 ‘양’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계양이라는 지명은 주부토, 장제, 수주, 안남에 이어 다섯 번째로 쓰인 부천 지역의 행정지명이다. 계양이란 지명은 고려시대에 부천 지역이 계양도호부가 되면서 처음 쓰였으나, 지금은 인천광역시 계양구와 계양산에서 명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 과거 계양으로 불렸던 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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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부천 지역이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행정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다.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칠 때 수주(樹州)로 개명된 후 995년(성종 14) 지방관이 처음으로 부임한 부천 지역은 정치적·군사적 중요도에 따라 안남도호부·계양도호부·길주목·부평부 등 읍호의 승강이 반복되었다. 계양도호부 시기에 인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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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부천의 계양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3인의 호걸. 현 경기도 부천시 지역 출신으로 조선 후기 계양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장(李樟), 박규문(朴奎文), 남휘(南徽)를 일컬어 계양삼호걸(桂陽三豪傑)이라고 한다. 이장[1666~1742]은 조선 중기 현종 대부터 조선 후기 영조 대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9세손으로 생원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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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철마산 북동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기도 부천시를 거치고 김포시를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굴포라는 명칭은 자연 하천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하천이 없는 곳을 인공적으로 파서 하천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굴포천은 조선 중종 때 삼남 지방에서 곡물 등을 싣고 강화도로 이동하는 배가 강화도 손돌목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 이 뱃길을 피해 더 안전하게 운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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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한강수리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도시개발에 힘이 실렸죠. 경인선과 경인국도가 뚫리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깊은구지는 부천군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계속하여 부평에 속해서 발전해 왔다. 부평도호부 이후의 부평군 때에는 석천면이라고 표기되었다. 석천면은 돌내면의 한자식 표기로, 돌내는 ‘냇물 돌아 드는 곳’을 의미하는 지명이었다. 원래는 깊은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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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백중은 농민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 추수를 하기 전에 잠시 허리를 펴며 쉴 수 있는 날이다. 주로 농사를 지었던 부천 지역에서는 일의 고됨을 위로하고 이웃 사이의 친목 도모를 위해 백중 행사가 거행되었다. 논에 김을 맬 때도 농악대를 만들어 두레를 논다. 백중은 백중일(百中日)이다. 다른 말로는 백종일(百種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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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부천의 산맥은 부천과 시흥의 경계에 있는 소래산 지맥으로 인천의 주안산, 부평의 계양산, 김포의 가현산, 통진의 문수산으로 이어진다. 소래산은 양지산으로 연결되어 성주산[200m], 할미산[153.2m], 원미산[123.8m], 춘의산[106m], 봉배산[86m] 등 부천 남부 및 동부 권역의 산지로 이어진다.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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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 행사. 산신제 등의 민간신앙은 우리의 전통 풍습이지만, 발해(渤海)의 역사만큼이나 생경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과 몸에 여전히 무르녹아 있는 것은, 오래 세월 내려온 민족의 유전적 풍습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전설이나 현재 남아 있는 지명을 보더라도 우리 일반 백성들이 하늘에 얼마나 치성(致誠)을 드렸는지 잘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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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 형태의 민간 서사를 가리키는 말로, 통상 그 갈래를 신화, 전설, 민담으로 삼분하고 있다. 신화는 신성에 관한 이야기이고, 전설은 증거물을 근거로 진실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이며, 민담은 흥미를 추구하는 이야기이다. 이 중에서 부천이라는 지역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설화는 전설과 민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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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정서를 뒤흔드는 마을 서울하고 가까운 역곡역 언저리나 인천하고 가까운 송내역 언저리는 고속도로 너머의 북쪽 동네들과 마찬가지로 부천시의 중심지와는 약간 동떨어져 있으며 아직까지 시골냄새가 꽤 짙은 곳이다. 송내동 남쪽은 국도를 따라 부천시의 중심지에 닿아 있으나 북쪽 지역으로 갈수록 농촌의 모습을 띤다. 그런가하면 고속도로 너머의 동네들은 부천시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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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부천의 행정 지명. 계양산 북쪽 수소리(樹蘇里)에 청사가 있었는데, 이곳이 밀림 속처럼 울창하다 하여 수주(樹州)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수주는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 통일신라시대 장제(長堤)에 이어 세 번째로 쓰인 부평의 행정 지명이다. 고려 초에는 대체로 고려왕조에 협조적이거나 귀부(歸附)해 온 지방 세력의 근거지를 주(州)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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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의 지방제도는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친 이후 성종 대에는 12목을 설치하였고, 현종 대에 4도호부 8목을 거쳐, 5도 양계로 고착되었다. 안남도호부는 현종 대에 설치되었던 4도호부(후에 5도호부로 바뀜) 중의 하나이다. 안남도호부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주를 안남도호부로 삼은 것에서 기인한다. 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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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미동과 춘의동·소사동·역곡동 사이에 있는 산. 원미산은 멀미산으로, 멀미의 ‘멀’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머리는 ‘’에서 나온 말로 ‘꼭대기·마루’를 뜻하며, ‘크다·신성하다·존엄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미’는 산의 고유어로 ‘미·메·뫼’ 등이 쓰였다. 그러므로 멀미산은 아주 ‘신성한 큰 산’이라는 뜻이다. 이는 역전앞처럼 동의어 반복으로 별다른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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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부천시는 서울시의 위성도시로서 동쪽과 북쪽으로 서울특별시, 서쪽으로 인천광역시, 남쪽으로 시흥시와 접한다. 현재 시청소재지는 부천시 중1동 1156번지[길주로 210]에 위치해 있다. 기반암은 주로 시생대의 결정편암과 백악기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부와 남부에는 성주산(聖柱山)·원미산(遠美山)·매봉재 등 해발고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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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지역은 과거 부평 지역으로 부평도호부가 자리하고 있던 계양산 밑으로 해서 김포를 경유하여 서울로 가던 큰 길이었다. 이후 경인철도가 개설되면서 소사역(素砂驛)이 생겼고 자연스레 역 주변에 시장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시장이 바로 소사삼거리 초입에 있었던 소사장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경기도 시흥의 뱀내장 터와 경기도 김포의 황어장 터를 오가던 길목에 있었던 유명한 우시장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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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부천 지역의 옛 이름. 고구려식 지명인 주부토는 문헌에서 전하는 부천 지역 최초의 지명이다. 이것은 당시 황무지에 둑을 쌓아 농경지로 만들었는데 그 둑이 연이어져 줄보둑→주부토라고 부르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처음 땅이름은 우리말이었는데, 중국에서 한자가 들어온 다음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자 해석식 뜻풀이는 별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주부토는 삼한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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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인 토양이나 암석의 성질·종류 및 상태. 부천시는 지질학적으로 보아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가 성주산 자락의 소사동을 중심으로 한 모래나 쇠가 나는 지역이다. 소사동 일대 지역은 배수가 잘 되어 ‘조리터’라고 불리기도 하며, 구릉과 야산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는 땅에서 잘 자라는 복숭아 재배에 적합하다. 이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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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성된 흙. 부천시의 토양은 주로 시생대의 결정편암계(結晶片巖系)와 백악기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천은 김포평야의 일부를 이루는 부평평야를 포함한다. 부평평야의 토양은 사면의 이동 물질과 표토에 포함된 유기 물질들이 운반·퇴적된 운적토이다. 소위 비옥한 충적 토양을 형성하여 농업 생산에 좋은 식토로서 지역 주민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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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포수가 계셔가지고 계양산에서 노루가 뛰었다고 산으로 잡으러 가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람이 부는 날에는 작동마을에 가고 싶어진다. 바람이 불면 작동의 보리밭 초록물결이 더욱 일렁인다. 사실 보리밭에 대한 느낌과 의미는 세대별로 다르다. 현재를 사는 아이들에게 보리밭은 그저 신기한 풍경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나, 적어도 30년 전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세대들에게 넘실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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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들. 우리나라 말에서 보통 ‘한’은 ‘크고 넓다’라는 뜻이다. 한다리들은 ‘한다리’가 놓여 있던 일대에 펼쳐진 들이라는 뜻이다. 다리 이름을 ‘한다리’라고 한 것은 놓여진 다리가 커서일 것이다. 한자로 대교(大橋)라고 한 것도 크다는 뜻을 살린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나 다리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다리들은 수해가 나면 농사를 작파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