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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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계양부사를 지낸 이규보가 경기도 부천 지역의 현상을 기록한 기문. 「망해지」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4에 실려 있다. 『동국이상국집』은 전권(前卷) 41권, 후집(後集) 12권의 총 5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권은 1241년(고종 28) 8월, 후집은 같은 해 12월에 아들 이함(李涵)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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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구자룡이 경기도 부천 지역을 소재로 하여 쓴 글을 묶은 산문집. 『그대 복사골을 사랑한다면』은 시인이며 동시·동화작가인 구자룡이 20여 년간(1991년 당시) 부천에서 살면서 『복사골문화』·『수도권일보』·『부천시민신문』·『부천신문』·『월간 교회와 역사』 등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산문집으로, 총 47편 중 41편이 부천과 관련된 글이다. 전체 5부로서 머리글 「따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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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호족. 본관은 금천(衿川)[고려 전기에는 금주, 현재 시흥]. 금천강씨의 시조 강여청(姜餘淸)의 5대손이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강감찬(姜邯贊)이 강궁진의 아들이다. 강궁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시대가 시작될 무렵 경주 지역에서 금천으로 이주하여 금천 지방의 호족으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강궁진이 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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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 지역 역사.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940년(태조 23) 전국에 있는 지방 군현의 지명을 바꿨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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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중균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 중 하나이다.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의 셋째 아들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예견하고 가족을 데리고 경주에서 무주(武州)[지금의 광주]로 피난하여 은거함으로써 광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무진주 서일동[지금의 전라남도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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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철마산 북동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기도 부천시를 거치고 김포시를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굴포라는 명칭은 자연 하천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하천이 없는 곳을 인공적으로 파서 하천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굴포천은 조선 중종 때 삼남 지방에서 곡물 등을 싣고 강화도로 이동하는 배가 강화도 손돌목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 이 뱃길을 피해 더 안전하게 운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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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에서 중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부천의 명칭은 주부토(主夫吐), 장제(長提), 수주(樹州), 안남(安南), 계양(桂陽), 길주(吉州), 부평(富平)에 이어 쓰인 행정명이다. 따라서 길주는 부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바로 직전의 명칭으로 길한 고을이란 뜻이다. 즉, 고려 충렬왕이 평소 매 사냥을 즐겨 징매이고개[景明峴]에 국립 매방을 설치하고 계양고을에 와서 수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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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해김씨 부천 입향조. 본관은 김해(金海). 김해김씨는 수로왕의 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뉜다.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목경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김지민은 380여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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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지민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제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98파로 나뉜다. 김유신의 직계 종파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로 나뉜다. 김유신의 증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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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나주나씨의 시조 나부(羅富)는 중국 예장 출신으로 송의 개국 공신 나언담의 후손이자 이부상서를 지낸 나귀(羅貴)의 형이다.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송나라가 멸망하자 귀화하여 나주에 정착하였다. 고려에 귀화한 이후 상장군을 지냈다.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나부의 선조 광정공이 주(周)나라 때 나국후(羅國侯)에 봉해지면서 성씨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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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용을 시조로 하고 장몽기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덕수장씨는 원나라 필도치(문에 관한 사무를 주관하던 몽고의 관직명)를 지낸 장경(長卿)의 아들 장순용을 시조로 한다. 『고려사(高麗史)』, 『덕수장씨대동보』 등에 의하면 장순용은 본래 아랍계 사람이었다. 제국공주[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 고려 충렬왕비]를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첨의부참리금자광록대부문하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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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행해진 매사냥. 고려시대에는 매사냥이 성행하였다. 특히 충렬왕은 자주 매사냥을 나갔다. 1282년(충렬왕 8) 왕비인 제국대장공주와 함께 충청도로 사냥을 떠나 임진현과 공암현을 거쳐 부평에 행차하여 사냥했으며, 1291년(충렬왕 17)에도 부평에서 사냥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 후기 원간섭기에 원은 고려에 조공물 중 하나로 해동청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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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시방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문화유씨는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여 10세손~12세손에서 14파로 나누어진다. 유차달의 본래 이름은 유해로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수레 1천대와 군량을 보급해 줌으로써 익찬벽상공신에 녹훈되었다. 태조로부터 수레로써 공(公)에 이르렀다는 뜻의 ‘차달’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시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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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반남(潘南).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戶長)이었던 박응주(朴應珠)[1214~1249]의 18세손으로, 증조는 박원만(朴元萬)이다. 박사온은 지금의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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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사온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반남박씨는 도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인 박응주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반남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왕비 2명, 재상 7명, 대제학 2명, 호당 5명, 청백리 1명, 공신 6명, 장신(장군) 3명 등 숱한 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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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박씨의 집성촌 부천은 그리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집성촌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비록 지금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그 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민씨, 변씨, 신씨, 박씨 등이 오랫동안 부천에 세거하였다. 집성촌은 동일한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씨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착, 형성 후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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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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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조선 초기 부천 지역은 고려의 관제를 그대로 답습하여 읍호의 승강 없이 부평부(富平府)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1413년(태종 13) 전국을 경기·충청·경상·전라·황해·강원·함길·평안의 팔도로 나누고, 그 밑에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는 팔도제(八道制)가 완성되었다. 팔도에는 각각 관찰사를 두고 그 밑의 각 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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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목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부평이씨의 시조 이희목(李希穆)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조 왕건에게 이씨를 하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증손인 이정공(李靖恭)이 부평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부평으로 삼았다. 부평은 부천시의 옛 이름으로 고려 문종 때에 부평으로 개칭되었다. 부평이씨를 빛낸 인물로는 이정공의 세 아들이 있다. 맏아들 이도는 참지정사를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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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동일 혈연 집단. 성씨는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부호로서, 처음 씨족의 정체성을 외부에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즉 부족국가로의 발전적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나름대로 다른 씨족과 구분 짓기 위하여 강·산·골짜기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던 것이 성씨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삼국이 성립되기 이전 씨족사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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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송국첨의 본관은 진천(鎭川)이며,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1226년(고종 13) 금나라의 장수 우가하(于哥下)가 침입하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우군장(右軍將)이 되어, 김희제(金希磾)·손습경(孫襲卿)과 함께 보기(步騎)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우가하를 물리치고 개선하였다. 정언을 거쳐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가 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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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경기도 부천 지역을 다스렸던 지방관. 수령은 군수와 현감을 합한 말이라고도 하고, 수는 ‘수토양민(守土養民)’, 영은 ‘명령을 받들어 시행한다’는 뜻이라고도 해석한다. 속칭 원님이라고도 한다. 수령은 한 지역의 행정·사법·재정을 총괄하며 군정(軍政)도 겸하여 관장한다. 이 때문에 군주를 대신하여 통치하는 자, 목민관(牧民官) 등으로 불리며 역대로 그 역할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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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남명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수원백씨는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있다. 백우경은 중국 소주 사람으로, 모함을 받고서 780년(선덕왕 1) 신라로 건너와 귀화하였다. 좌복야사공대사도를 지냈고, 경주 자옥산 아래에 정착하였다. 본관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시조 백창직(白昌稷)의 증손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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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의 옛 이름. 안남(安南)은 계양산의 다른 이름인 안남산(安南山)에서 유래되었다. 안남은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 통일신라시대에 장제(長堤), 고려 전기 때 수주(樹州)에 이어 네 번째로 쓰인 부평의 행정 지명이다. 1150년(의종 4) 왕은 수주를 폐하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안남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계양구 목상동과 서구 시천동, 그리고 장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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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의 지방제도는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친 이후 성종 대에는 12목을 설치하였고, 현종 대에 4도호부 8목을 거쳐, 5도 양계로 고착되었다. 안남도호부는 현종 대에 설치되었던 4도호부(후에 5도호부로 바뀜) 중의 하나이다. 안남도호부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주를 안남도호부로 삼은 것에서 기인한다. 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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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이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본래 성은 김이다. 성주 김선평[신 안동김씨 시조]·장정필[안동장씨 시조]과 의논하여, 병사를 모아 왕건을 도와 고창군 병산[지금의 안동군 와룡면 서지리]에서 견훤의 8천 대병을 함몰시켰다. 고려 태조가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했다(能炳機達權)"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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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기도 부천 지역이 포함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의하면 남쪽에는 양광도(楊廣道)·경상도(慶尙道)·전라도(全羅道)·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 등 5도, 북쪽에는 서북계(西北界)와 동북계(東北界)의 양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고려의 5도 양계라는 지방구획은 남쪽의 일반 행정구역과 북쪽의 군사 행정구역의 이원적 구성이었던 셈이다. 양광도 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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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종원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여흥민씨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하고 있다. 민칭도는 공자(公子)의 제자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현 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명문의 지위를 굳히기 시작한 여흥민씨는 다수의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였다. 민칭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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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부천시의 역사. 부천시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 인접해 있다.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구로구와 닿고,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경계하며, 서남쪽은 인천광역시 계양구·부평구 및 남동구와 접한다. 한강 하류에 인접하여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 이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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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효전을 시조로 하고 차윤보·차선우·차천흥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연안차씨는 차효전(車孝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차효전은 문화유씨의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의 큰 아들이다. 아버지 유차달과 함께 고려의 창업에 공을 세워 대광백에 봉해졌고, 연안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유차달의 선조의 성씨는 원래 차씨였다. 그러던 것이 유차달의 5대조인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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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계양군 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고려 제20대 신종(神宗)의 아들인 양양공(襄陽公) 왕서(王恕)의 4대 후손이다. 1309년(충선왕 1)에 계양군(桂陽郡) 관찰사와 원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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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출몰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일본 해적집단. 고려시대에 왜구는 일본의 이키[壹岐]·쓰시마[對馬]·기타큐슈[北九州]·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왜구는 충정왕·공민왕·우왕에 이르는 40여 년간 100~500척의 선단으로 활동 무대를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의 연안까지 넓혔으며, 때로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노략질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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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수안현(守安縣)의 공신(功臣). 윤봉의 가계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고려 고종 대 행상서도관원외랑(行尙書都官員外郞)을 지낸 윤승해(尹承解)의 묘비를 통해 윤봉이 윤승해의 7대조이고, 윤봉의 후손으로 현종 대 중추사(中樞使) 검교사도상주국(檢校司徒上柱國)을 역임한 윤징고(尹徵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윤봉은 수주(樹州)의 속현이던 수안현(守安縣)의 삼한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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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징·남연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의령남씨의 시조 남민(南敏)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본래의 이름은 김충(金忠)이다. 755년(경덕왕 14)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신라 유린지[현재 영덕군 축산면]에 이르렀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였다. 경덕왕이 중국 여남(汝南)에서 왔다하여 남씨(南氏) 성을 하사하여 이름을 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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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수주(樹州).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삼한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관계(官階)가 삼중대광에 이르렀던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이다. 이정공의 아들로는 예종(睿宗) 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숙(李璹)과 인종(仁宗) 대 문하시중을 역임한 이위(李瑋)가 있다. 문과에 급제한 뒤, 1059년(문종 13) 지남원부사 시예부원외랑(知南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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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계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는 이천서씨는 서씨의 대종으로, 현존하는 20여 개 서씨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서신일은 이천서씨의 시조이자 모든 서씨의 도시조가 된다. 서신일은 신라 효공왕[897~912] 때 아간대부를 지내다가 국운이 다함을 개탄하여 이천에 은거하였고, 이후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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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의 옛 지역인 수주(樹州)의 호족이자 부평이씨의 시조. 본관은 부평(富平). 『부평이씨대동보(富平李氏大同譜)』에 의하면 부평이씨의 시조는 이희목(李希穆)이고, 그 후손으로는 문종(文宗) 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이정공(李靖恭)이 있다. 이정공의 아들로는 예종(睿宗)대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숙(李璹)과 인종(仁宗)대 문하시중을 역임한 이위(李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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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부천 지역에 설치한 지방행정구역. 742년 신라 효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경덕왕은 진골 귀족의 세력을 제압하고 미약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화정책을 실시하였다. 747년에는 중시를 시중(侍中)으로 변경하고, 국학에 제업박사(諸業博士)와 조교를 두어 유학 교육에도 힘쓰는 한편, 748년에는 정찰(貞察)을 두어 백관을 규찰하게 하여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전제왕권 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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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안골에서 개롱지로 오르는 고개. 절고개은 개롱지에서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당동과 약대동에서 여월·까치울·온수동 쪽으로 넘어갈 때 거쳐야 했다. 절고개는 매봉을 등산하는 사람들의 등산로이면서 매봉 봉우리에 있는 군부대의 군사 도로로도 이용되고 있다. 군부대가 있어서 매봉 정상으로는 통하지 못하고 이 고개를 넘어 안골약수터를 거쳐 춘지봉으로 넘어간다.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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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금속 재료를 활용하여 전통 기법으로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과 그 활동. 금속 부문 조각장(彫刻匠)은 금은 등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거나 금속의 표면을 두드리거나 깎거나 용봉 등의 문양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능을 가진 전통 금속 공예 장인의 일종이다. 이와 같은 작업은 전통적으로 조이(彫伊)라고 불렀으며, 금·은·동 따위의 금속 제품에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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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부천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지방행정구역. 문헌에서 전하는 부천 지역 최초의 지명인 주부토는 고구려식 지명이다.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역에 포함되었던 시기는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인 한성을 함락시키고 한강 일대를 차지하였던 때로 보인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이 지역은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인근 지역인 인천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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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오를 시조로 하고 박철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죽산박씨의 시조 박기오(朴奇悟)는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박언립(朴彦立)의 아들이다.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움으로써 죽주백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죽산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박기오의 손자 박충숙(朴忠淑)은 고려 현종 때 중군병마사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 참지정사와 문하시랑평장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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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부를 시조로 하고 심효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청송심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1214~1259]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사승(衛尉寺丞)을 지낸 청이군 심홍부(沈洪孚)이다. 증손 심덕부(沈德符)가 우왕 때 청성충의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심덕부는 청송심씨를 중흥시킨 인물로 후손들에 의해서 중시조로 받들어 지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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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를 조상으로 하는 우량(友諒)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한씨대동보」에 의하면, 우량은 마한이 망한 후 신라에서 벼슬을 하여 한씨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우량의 32세손 한란은 928년(태조 11)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공을 세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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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남대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예부상서를 지낸 최균(崔均)의 아들로, 형제로는 공부상서를 역임한 최보연(崔甫延)이 있다. 부인은 용구현부인 진씨(龍駒縣夫人 秦氏)로 합문지후(閤門祗候) 진중기(秦仲基)의 딸이다. 아들은 최윤칭(崔允偁)과 최윤개(崔允愷) 두 명으로, 장남은 내시합문지후(內侍閤門祗候)이고 막내는 국자박사겸직한림원(國子博士兼直翰林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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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까지 경기도 부천 지역의 역사. 삼국의 통일 후 부천 지역은 통일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그 지배를 받았다.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개창 세력의 중심지였던 개성과 가까이 위치하여 고려 개국의 중심이 되는 호족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통일 후 경덕왕(景德王) 대에 신라의 제도와 관직 등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을 단행하였다. 757년(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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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상주·윤집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는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한다. 윤신달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삼중대광태사에 오른 인물이다. 5세손 윤관(尹瓘)은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파평백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윤관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파평으로 삼게 되었다. 윤관은 일곱 아들을 두었으며 아랫대로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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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의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조 왕건으로부터 신씨를 하사받았다. 또한 평산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이후 후손들이 평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평산신씨는 14세손에서 25파로 분파된다. 이 중 사간공파(思簡公派)·문희공파(文僖公派)·제정공파(齊靖公派)·정언공파(正言公派)·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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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부천 일대에 설치한 지방행정구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도입했던 군현제는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방 통치제도로 정착하였다. 군현제는 중앙정부가 효과적으로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제도로서, 중앙정부는 물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민으로부터 군현을 단위로 조세와 노동력을 수취했다. 통일신라는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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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을 시조로 하고 정욱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해주정씨는 고려 신종[1198~1204] 때 전법정랑(典法正郞)을 지낸 정숙(鄭肅)을 시조로 한다. 정숙의 선대에 관한 계보는 문헌이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정숙의 조상이 해주에서 세거하던 사족이었다고만 전해진다. 병란으로 문헌이 실전되어 4~5대의 계보를 밝힐 수 없게 되자, 고려 말 정언을 중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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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 부천 지역 출신의 호족.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이며, 후손 중에 예종과 인종 시대에 각각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허경(許慶)과 허재(許載)가 있다. 허선문은 통일신라 말기에 오늘날 부천시에 인접하여 서울시 양천구로 편입되어 있는 지역에서 농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량을 제공하여 왕건으로부터 ‘가부(假父)’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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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경기도 부천에 근거하면서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통일신라 말기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는 호족이라는 새로운 사회 세력이 독자적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호족은 지방으로 낙향한 귀족 세력, 지방의 토착 세력인 촌주, 지방의 군사 세력 등으로 스스로 장군(將軍)이나 성주(城主)를 자처하면서 지방 사회를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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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아들은 홍녹주(洪祿遒)로 서북면 병마사를 역임하였다. 1233년(고종 20) 서경(西京)에서 일어난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의 반란이 진압된 뒤 이듬해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서 서경을 안무(按撫)하였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원종 대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으며, 두 차례에 걸쳐 서북면을 다스리면서 선정을 폈으므로 지역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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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를 시조로 하고 김백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희천김씨의 시조 김우(金佑)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의 셋째 아들이다. 고려 강종 때 문하시중으로 나라에 공을 세워 온양군에 봉해짐으로써 온양을 본관으로 하는 온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13세손 김우(金宇)가 1400년(정종 2) 내란을 평정한 공으로 희천군(熙川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