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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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계백(階伯)[?~660]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름은 승(升)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의 성씨와 같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계백’을 성씨로 보기도 한다. 계백의 조상은 개백현(皆伯縣)[현 경기도 고양시]을 근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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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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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고란사(皐蘭寺)는 부소산성 북쪽의 백마강 연변에 있다. 법당 뒤의 암벽에 자생하는 ‘고란초’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암벽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한 번 마시면 3년이 젊어져서 백제의 임금도 매일 마셨다는 전설과 함께 부여 8경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부여현감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고관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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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 시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은 사실상 후삼국 통일과 함께 고려에 편입되었다. 고려는 지금의 부여 지역을 부여·임천·홍산·석성 등 4개의 군현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부여와 석성[현 부여군 석성면]은 이때 공주에 예속되어 있었고, 임천은 홍산[현 부여군 홍산면]과 함께 충청남도 서천 일대를 예속하면서 오늘날 부여 지역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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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재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부여에 세거하였던 기계 유씨는 유성복(兪成福)의 자손이다. 유성복의 후손 중 부여에 세거하였던 분파는 진사공파(進士公派) 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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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대조사(大鳥寺)는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시대에 삼층석탑[대조사석탑]과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을 조성하였고 고려 후기에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도 사대부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사격을 갖추고 있었다. 대조사는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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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신의 재실. 덕림병사(德林丙舍)는 고려 말의 문신 조신(趙愼)에게 제사 지내는 재실이다. 조신은 고려 공민왕 때 회양부사를 지낸 관료이다. 1368년(공민왕 17) 형 조사공이 신돈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자 이름을 조사렴(趙思廉)에서 조신(趙愼)으로 바꾸고 부여 임천면(林川面)에 은거하였다. 재실 왼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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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동사리석탑(東寺里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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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진을 시조로 하고 상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목천 상씨(木川 尙氏)의 시조는 고려 초에 목천(木川)[현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일대] 호장을 지낸 상국진(尙國珍)이다.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가 통일 왕조를 세우자 후백제의 유민인 상국진은 목천 상왕산(尙王山)을 기반으로 항쟁을 이어 갔다. 이에 분노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상국진에게 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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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문화 유씨 집성촌. 문화 유씨(文化 柳氏)는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삼한공신 유차달(柳車達)이다. 문화 유씨는 충경공파(忠景公派), 좌상공파(左相公派), 하정공파(夏亭公派), 검한성공파(檢漢城公派), 지후사공파(祗候使公派) 등 5개의 대파(大派)를 이루는데, 이 중 충경공파와 좌상공파 후손들이 부여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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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부여 금강사지(扶餘 金剛寺址)는 1964년과 1969년에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2015년과 2016년도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1964년도 조사에서 목탑지·금당지·강당지·행랑지·남회랑지가 확인되었고, 1966년도 조사에서 중문지·서승방지·북승방지가 확인되었다. 2015년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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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보살 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전기에 유행한 거대 석불을 대표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대조사 경내 원통보전 뒤쪽 언덕의 화강암 암반 위에 조각한 높이 10m의 대불이다. 미륵보살로 불리고 있으나, 근거는 미약하며, 관음보살로 불린 적도 있다. 크기나 형태가 높이 18m에 이르는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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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보살 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전기에 유행한 거대 석불을 대표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대조사 경내 원통보전 뒤쪽 언덕의 화강암 암반 위에 조각한 높이 10m의 대불이다. 미륵보살로 불리고 있으나, 근거는 미약하며, 관음보살로 불린 적도 있다. 크기나 형태가 높이 18m에 이르는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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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김거익의 재실 및 신도비. 부여 부양재 및 신도비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다. 부양재는 고려 말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고 고려가 망하자 부여로 낙향하여 은거한 퇴암(退庵) 김거익(金居翼)을 모신 사우이다. 김거익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고려 말기의 대학자였던 이색과의 도의지교(道義之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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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부여 정림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석조 불상.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심지에 있는 6세기 후반 백제 시대 유적인 부여 정림사지 강당 터에 봉안되어 있다.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은 국보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축선 위에 있다. 부여 정림사지에서는 고려 시대 정림사의 중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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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는 수령 1,500년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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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홍산객사에 있는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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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홍산객사에 있는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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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으로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와 같은 백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택리지』에서는 부여의 지역적 특징으로 경치가 매우 훌륭하며, 땅이 기름져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도읍으로는 지대가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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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서공(徐恭)[1101~1171]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거란군을 물리치고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을 지낸 서희(徐熙)의 고손자이다. 아버지는 검교호부상서 판장작감사(檢校戶部尙書 判將作監事) 서균(徐鈞)이고, 어머니는 검교예부시랑 급사중(檢校禮部侍郞 給事中) 이당감(李唐鑑)의 딸 창화군대부인 이씨(昌化郡大夫人 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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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존을 시조로 하고 이흥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서천 이씨(舒川 李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알려진 이익존(李益存)[?~?]이고, 중시조는 충숙왕 즉위에 공을 세운 이언중(李彦忠)이다. 서천 이씨는 이흥의(李興儀)를 파조로 하는 부여공파(扶餘公派), 이흥려(李興麗)를 파조로 하는 주부공파(主簿公派), 이배근(李培根)을 파조로 하는 부사공파(府使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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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성충(成忠)[?~656]은 의자왕 초기부터 국왕을 보필하였다. 백제의 제1관등인 좌평(佐平)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책임자를 맡아 정무의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충은 656년(의자왕 16) 국왕이 궁인(宮人)들과 사치와 향락에 빠져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자 적극 간언을 하다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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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의 성은 중국의 한자 문화를 수용하면서부터 시작되어, 초기에는 왕족이나 일부 귀족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신라 통일 이후 일부 공신 집단에 대해 임금이 성을 내려 주다가 남북국 시대의 지방 호족들이 성씨를 취득하였다. 고려 태조(太祖)는 호족을 포섭하려고 해당 고을에 대한 우월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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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역사 유적. 부여(扶餘)는 삼국 시대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다. 백제는 538년(성왕 16)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비 천도는 계획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비왕도는 도성제(都城制)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조영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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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재배되는 특산물 과일. 수박[水瓜(수과)]은 쌍떡잎식물 박목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며 서과(西瓜)·수과(水瓜)·한과(寒瓜)·시과(時瓜)라고도 한다. 과일 표면의 색은 푸른 색 바탕에 줄무늬가 있는 것이 많지만 종류에 따라 색상이 다양하다. 과육은 수분이 많아 달고 적색을 띠지만 황색 또는 백색인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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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재배되는 특산물 과일. 수박[水瓜(수과)]은 쌍떡잎식물 박목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며 서과(西瓜)·수과(水瓜)·한과(寒瓜)·시과(時瓜)라고도 한다. 과일 표면의 색은 푸른 색 바탕에 줄무늬가 있는 것이 많지만 종류에 따라 색상이 다양하다. 과육은 수분이 많아 달고 적색을 띠지만 황색 또는 백색인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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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신안 주씨(新安 朱氏)의 시조는 성리학을 확립한 중국의 학자 주희(朱熹)[1130~1200]이다. 중국 하남성 신안면(新安面)에서 주희의 증손자로 태어난 주잠(朱潛)[1194~1260]은 아들과 문하생을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였고, 이후 능성(綾城)을 본관으로 사용하다가 아들과 손자 대에 웅주(熊州)·전주(全州) 등으로 분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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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역사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 부여 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하였는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부여 지역에서는 외산면과 홍산면의 지표 조사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외산면 반교리에서는 몸돌 1점이, 홍산면 좌홍리에서는 양날찍개 1점이 수습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은산면과 규암면에 신석기 관련 유적이 수습되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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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금계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 오덕사(五德寺)는 조선 시대에 중종의 장남인 복성군(福城君)[1509~1533]의 원당이 되었다가, 한때 복성군의 양자였던 선조의 태실비를 세우면서 선조의 원찰이 된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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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중양리와 보령시 미산면 삼계리, 내평리, 옥현리, 풍산리에 걸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이라는 이름은 전국에 100여 개가 있으며 주로 풍수지리와 관련된 유래가 전하지만, 부여군의 옥녀봉에 대한 유래는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일명 각시봉이라고도 불리며, 서쪽의 보령시에 신랑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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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왜구들이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한 사건.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국과 중국의 해안 지역에 주로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倭寇)라고 한다. 왜구가 고려에 처음 침입한 것은 1223년(고종 10)이다.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총 529회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였고 이 가운데 충청남도 지역을 침략한 것은 78회에 달하였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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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종교적으로 따르는 문화 체계. 유교는 공자(孔子)를 시조로 모시는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불린다. 인(仁)과 예(禮)를 통하여 공자·맹자(孟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일종의 종교이다. 유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 전파되어 사회 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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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임천 유태사 묘에 위패가 봉안된 고려 전기 무신. 유금필(庾黔弼)[?~941]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평산 유씨(平山 庾氏)와 무송 유씨(茂松 庾氏)의 시조이다. 아들은 유긍(庾兢)·유관(庾官)·유유(庾儒)·유경(庾慶)이며, 딸은 태조 왕건의 제9비인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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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유금필 장군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유금필 장군 이야기」는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고려의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941]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유금필은 역사적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나 「유금필 장군 이야기」에서는 백제 장군으로 전승된다. 유금필의 사당인 임천 유태사 묘는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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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장군 유금필을 모시는 사당. 유금필(庾黔弼)[?~941]은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성흥산성실기」에 따르면, 진남장군으로 전라도 순천 지역에 머물던 유금필이 송악으로 돌아가다가 부여 가림성의 지역민들을 진휼하였고, 은덕을 잊지 못한 지역민들이 임천 지역에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유금필이 가림성에 주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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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의열사의 건립과 제향 인물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석. 의열사비(義烈祠碑)는 의열사(義烈祠)의 건립 과정과 의열사에 제향하는 인물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의열사는 1575년(선조 8) 부여현감 홍가신(洪可臣)이 건립한 사당이며, 1578년(선조 11) 사액받았다. 의열사에서는 부여 지역 출신인 백제의 3충신, 고려의 이존오(李存吾),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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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여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기행문을 남긴 성리학자이자 문신. 이곡(李穀)[1298~1351]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초명은 이운백(李芸白), 자는 중부(仲父), 호는 가정(稼亭),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한산 이씨(韓山 李氏) 시조인 이윤경(李允卿)의 6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증판도판서(贈版圖判書) 이창세(李昌世)이다. 아버지는 증도첨의찬성사(贈都僉議贊成事) 이자성(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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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목은 이색의 조선 후기 초상.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본관은 한산이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더불어서 ‘고려 3은(三隱)’으로 불린다. 원나라의 국자감(國子監)에서 생원으로 지내면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면서 고려로 귀국하게 되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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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행정 구역. 석성현은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위치한 행정 구역이었고, 이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군현이었다. 두 군현은 백제 때부터 다른 영역으로 설정되어 각기 다른 행정 영역을 이루고 있었는데, 1414년(태종 14) 전국 지방 군현의 통폐합 과정에서 통합 대상이 되어 이산현의 이(尼) 자와 석성현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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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장군 유금필의 사당. 임천 유태사 묘(林川 庾太師 廟)는 태사(太師) 충절공(忠節公) 유금필(庾금弼)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유금필[?~941]은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성흥산성실기」에 따르면, 진남장군으로 전라도 순천 지역에 머물던 유금필이 송악으로 돌아가다가 부여 가림성의 지역민들을 진휼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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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혁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토착 성씨. 중국 북송 때 인물인 조수강(趙守康)은 고려로 건너와서 이름을 조천혁(趙天赫)으로 고치고 임천(林川)[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정착하여 임천 조씨(林川趙氏)의 시조가 되었다. 조천혁이 가림백(嘉林伯)으로 책봉되었으므로 임천 조씨를 가림 조씨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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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진주 강씨 집성촌. 진주 강씨(晉州 姜氏) 집성촌인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長蝦里)는 조선 시대 임천군 남산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때 장정리(長亭里)·후포리(後浦里)·탑리(搭里)·하곡리(蝦谷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장정리의 ‘장’ 자와 하곡리의 ‘하’ 자를 따서 장하리라 하였다.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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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전득우의 묘. 전득우묘(田得雨墓)는 조선 전기 무신 전득우(田得雨)의 묘이다. 전득우는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아버지 전주(田柱)는 고려가 망할 때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여 공주로 유배되었다. 전득우의 아들 전흥(田興)은 태종 즉위 이후 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세종 대에도 의금부제조,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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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진주 강씨 종족 마을. 장정마을은 금강 변에 있는 진주 강씨(晋州 姜氏) 종족 마을이다. 진주 강씨가 장하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이후 19세기 이르러 종족 마을로서의 특징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장하리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였다. 대종교와 민족 운동 지도자를 동시 배출하였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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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진주 강씨 종족 마을. 장정마을은 금강 변에 있는 진주 강씨(晋州 姜氏) 종족 마을이다. 진주 강씨가 장하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이후 19세기 이르러 종족 마을로서의 특징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장하리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였다. 대종교와 민족 운동 지도자를 동시 배출하였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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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락을 도시조로 하고 황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창원 황씨(昌原 黃氏)의 도시조는 중국 한(漢)나라의 장군이던 황락(黃洛)이다. 황락은 사신으로 교지국(交趾國)[베트남]에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표류하였고, 황락의 셋째 아들인 황병고(黃丙古)가 창원백(昌原伯)에 책봉되어 후손들이 창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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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파평 윤씨(坡平 尹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고려개국통합삼한익찬공신(高麗開國統合三韓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고 태사(太師)를 지낸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은 경기도 파주 파평산 기슭에 있는 용연지(龍淵池)라는 연못에 떠 있던 옥함(玉函)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신달이 옥함에서 나올 때 겨드랑이에 81개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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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을 시조로 하고 조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풍양 조씨(豐壤 趙氏)의 시조는 조맹(趙孟)이다. 당시 풍양[현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던 조맹은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우고 조씨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풍양을 본관으로 삼고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풍양 조씨는 조사충(趙思忠)을 파조로 하는 호군공파(護軍公派), 조신(趙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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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흥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현존하는 하동 정씨(河東 鄭氏)는 세 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첫째는 통일 신라 말 하동으로 이거하여 고려 초에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고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이다. 둘째는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도첨의좌정승과 검교태자첨사 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는 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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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존재하였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에도 존재하였고, 소(所)는 고려 시대에 생겼다. 향과 부곡의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소의 주민들은 수공업이나 광업에 종사하며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나라에 바쳤다. 향·부곡·소의 주민들은 일반 양인들에 비하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였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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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여현감을 역임한 문신. 홍가신(洪可臣)[1541~1615]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간옹(艮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한(洪瀚)이고, 할아버지는 홍윤창(洪胤昌)이다. 아버지는 홍온(洪昷)이고, 어머니는 신윤필(申允弼)의 딸 흥양 신씨(興陽 申氏)이다. 부인은 이형(李衡)의 딸 재령 이씨(載寧 李氏)이고, 아들은 홍은(洪檃)·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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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진을 시조로 하고 순한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순씨(荀氏)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 순후(荀侯)에 책봉되면서 후손들이 성을 순씨로 하였다고 전한다. 순자(荀子)로 불리는 순황(荀況)의 후예 순자안(荀自安)이 신라로 건너와 우복야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후의 계보는 알 수 없다. 순씨는 홍산(鴻山) 외에 임천(林川)·창원(昌原)·연곡(連谷) 등의 본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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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년 최영이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 1376년(우왕 2) 7월 왜구가 침입하여 금강 유역 일대를 휩쓴 뒤 부여·공주·석성·연산현의 개태사(開泰寺) 등을 도륙하는 과정에서 양광도원수(楊廣道元帥) 박인계(朴仁桂)가 전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영(崔瑩)[1316~1388]이 출정을 자원하여 군대를 이끌고 홍산으로 내려와 왜구를 소탕하였다. 이에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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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홍산대첩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개최하는 지역 문화제. 홍산대첩문화제(鴻山大捷文化祭)는 1376년(고려 우왕 2) 부여, 공주 지역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최영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무명 장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문화제이다. 1977년 홍산면민이 뜻을 모아 홍산면 태봉산성에 ‘홍산대첩비’를 세웠다. 홍산대첩비 건립의 정신을 이어 받아 홍산대첩문화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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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홍산대첩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개최하는 지역 문화제. 홍산대첩문화제(鴻山大捷文化祭)는 1376년(고려 우왕 2) 부여, 공주 지역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최영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무명 장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문화제이다. 1977년 홍산면민이 뜻을 모아 홍산면 태봉산성에 ‘홍산대첩비’를 세웠다. 홍산대첩비 건립의 정신을 이어 받아 홍산대첩문화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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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홍산현(鴻山縣)을 성주산(聖住山) 동편에 위치한 고을로 인근의 임천(林川)·정산(定山) 등과 함께 풍속이 비슷하며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한 사대부 집안이 많다고 설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홍산현의 풍속에 대해서 문무를 숭상하며, 누에 치기에 힘쓴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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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흥수(興首)[?~?]는 백제 의자왕 때 제1품 좌평을 지낸 충신이다.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수는 위기를 맞은 의자왕이 귀양지로 사람을 보내 의견을 구한 만큼, 의자왕 즉위 초 왕권 강화를 위하여 성충(成忠)과 함께 적극 노력한 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