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
충청남도 부여군 내의 사람의 이동은 물론 화물의 수송, 전달과 관련된 모든 행위와 조직 체계. 교통이란 넓은 의미로 경제적 방법에 의한 재화의 이동 관계 전부와 인간 상호간의 일체의 동적 관계, 즉 인간 사회생활의 전부를 교통이라고 할 수 있기에, 교통을 통한 산업 경제 활동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대부분 좁은 의미의 교통으로 사람·재물·의사(意思)의 장소적 이동, 즉 운송 및 통...
-
1876년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이후부터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시기까지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역사. 서세동점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치던 대원군 집권기는 1873년 고종의 친정으로 막을 내렸다. 고종이 집권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근대화 팽창 정책을 펴던 일본의 포함 외교가 맞물리면서 1876년 2월 조선과 일본은 조일수호조규를...
-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을 계기로 부여 지역의 홍산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항쟁.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하였고,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다. 근대 의병운동(近代 義兵運動)은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저항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부여 지역 인근에서도 1906년 홍주의병이 일어났다. 이용규와 홍순대 등 부여 출신 인물들이...
-
1894년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동학 농민 운동은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에서 비롯되었다. 전라도는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여서 국가 재정도 전라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어 농민들은 항상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민성휘(閔聖徽)[1582~1647]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초명은 민성징(閔聖徵), 자는 사상(士尙, 士祥), 호는 용졸당(用拙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지 민기문(閔起文)이고, 할아버지는 민이(閔涖)이다. 아버지는 호조정랑 민유부(閔有孚)이고, 어머니는 정척(鄭惕)의 딸 해주 정씨(海州 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의정(李義貞)의 딸 전주 이씨...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관할 성지. 부여 지석리 성지(扶餘 支石里 聖地)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고 1984년 시성(諡聖)된 순교 성인 2위를 기념하기 위하여 천주교 대전교구와 홍산성당에서 순례지로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다....
-
주희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신안 주씨(新安 朱氏)의 시조는 성리학을 확립한 중국의 학자 주희(朱熹)[1130~1200]이다. 중국 하남성 신안면(新安面)에서 주희의 증손자로 태어난 주잠(朱潛)[1194~1260]은 아들과 문하생을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였고, 이후 능성(綾城)을 본관으로 사용하다가 아들과 손자 대에 웅주(熊州)·전주(全州) 등으로 분관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체계 및 특성. 한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시간의 흐름이나 주변의 영향에 따라 항상 변화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로 인하여 한 언어 안에서도 어떤 지역의 방언인지에 따라 음운, 문법, 통사, 어휘 등 각 체계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부여는 충청남도 남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논산시, 서쪽으로는 보령시와 서천군, 북쪽으로는 공주시와 청양군, 남쪽...
-
조선 시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驛院)은 근대 이전 교통의 요지에 설치한 관영 교통·통신 시설 및 숙박 시설이다.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 사이를 연결하여 공문서 전달, 관물 수송, 사신 왕래와 숙식 등의 편의 제공을 위하여 도로의 중요 지점에 설치되었다. 역(驛)은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
-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의병은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대이다. 의병운동(義兵運動)의 전개는 크게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일제 강점기로 나눌 수 있다. 임진왜란 기간 동안 부여 지역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여 출신 또는 부여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의병장 또는...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수(李耉壽)이고, 할아버지는 이극강(李克綱)이다. 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어머니는 송제신(宋濟臣)의 딸 진천 송씨(鎭川 宋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윤승훈(尹承勳)의 딸 해평 윤씨(海平 尹氏)이고, 두 번째 부...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수(李耉壽)이고, 할아버지는 이극강(李克綱)이다. 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어머니는 송제신(宋濟臣)의 딸 진천 송씨(鎭川 宋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윤승훈(尹承勳)의 딸 해평 윤씨(海平 尹氏)이고, 두 번째 부...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이덕린(李德麟)[?~?]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금곡(金谷)이다.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의 후손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민란을 일으킨 반란군 수장. 이몽학(李夢鶴)[?~159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서울에 살았으나 품행이 좋지 않아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를 전전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이 쓴 『난중잡록(亂中雜錄)』에는 “이몽학이 본래 흉하고 교활한 무리로서...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이문상(李文祥)[1712~1789]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정보(定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민적(李敏迪)이고, 할아버지는 판서 이사명(李師命)이다. 아버지는 이의지(李毅之)이고, 어머니는 나정좌(羅廷佐)의 딸 나주 나씨(羅州 羅氏)이다. 큰아버지 이희지(李喜之)의 양자로 입적되었으며, 부인은 성재(成梓)의 딸 창녕 성씨(昌寧 成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이명(李頥命)[1658~172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지인(智仁) 또는 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이고, 어머니는 황일호(黃一皓)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다. 부인은 판서 김만중(金萬...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이명(李頥命)[1658~172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지인(智仁) 또는 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이고, 어머니는 황일호(黃一皓)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다. 부인은 판서 김만중(金萬...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현조(李玄祚)[1654~171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계상(啓商), 호는 경연당(景淵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수광(李睟光)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성구(李聖求)이다. 아버지는 이석규(李碩揆)이고, 어머니는 민성복(閔聖復)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부인은 김귀만(金龜萬)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이희지(李喜之)[1681~172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사복(士復) 또는 양백(陽伯), 호는 응재(凝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경여(李敬輿)이고, 할아버지는 이민적(李敏迪)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사명(李師命)이고, 어머니는 조현기(趙顯期)의 딸 임천 조씨(林川 趙氏)이다. 부인은 윤헌경(尹憲卿)의 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규석(崔奎錫)[1858~1923]은 1858년 8월 1일 충청남도 보령군 주포면 주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김종석(金種錫), 박성요(朴性堯), 황우열(黃宇烈), 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고, 10매를 부여면 구교리[현 부여읍 구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