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계백(階伯)[?~660]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름은 승(升)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의 성씨와 같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계백’을 성씨로 보기도 한다. 계백의 조상은 개백현(皆伯縣)[현 경기도 고양시]을 근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
-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국지모(國智牟)[?~?]는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국씨 가문이다. 국씨는 국지모 이외에도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에 국변성(國辯成),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국사리(國沙利), 덕솔 국수다(國雖多), 국변성 등이 확인된다. 국변성이 의자왕이 당나라로 갈 때 대좌평 사택천복 등과 함께 끌려갔다는 기록에서...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에서 군장동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군장동(軍藏洞)」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에서 백제군이 마지막까지 신라군에 저항한 군장동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에 속하는 법정면. 규암면(窺岩面)은 조선 시대 천을면(淺乙面)으로 불리었다.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은 조선 말 부여군 천을면 지역에 있던 바위를 ‘엿바위’ 또는 ‘규암’이라 부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엿바위의 명칭은 과거 바위 뒤에서 망을 보던 병사가 당나라의 소정방이 침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사비성에 알린 일로 인하여 붙여진 것이라 전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금성산성(錦城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금성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이다. 부여 지역 중심부의 동쪽에 있으면서 왕도 중심부의 동남방 방어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금성산성은 부소산성에 버금가는 위용을 지니는 성이다. 금성산성의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비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면 왕궁 및 왕도 방비를 위하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금성산성(錦城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금성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이다. 부여 지역 중심부의 동쪽에 있으면서 왕도 중심부의 동남방 방어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금성산성은 부소산성에 버금가는 위용을 지니는 성이다. 금성산성의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비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면 왕궁 및 왕도 방비를 위하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바위. 낙화암(落花岩)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다. 660년 7월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왕도 사비성(泗沘城)이 함락되고 백제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였다. 백제 왕궁에 있던 궁녀들은 적군에 항복하기보다 죽기로 마음먹고 부소산성의 북쪽 강변 바위에서 차례로 떨어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후대에 궁녀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의 낙화암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낙화암 전설」은 백제 멸망 당시 의자왕(義慈王)과 궁녀들이 낙화암에서 함께 투신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281년 일연(一然)[1206~1289]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1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조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장소와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
백제 시대 당나라에서 제30대 무왕과 제31대 의자왕, 부여융과 부여경에게 내린 명예직 벼슬. 대방군은 후한(後漢) 말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요동 지역의 패권자인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樂浪郡)의 둔유현(屯有縣)을 비롯한 남쪽 7개 현을 따로 떼어내 설치하였던 이른바 외군(外郡)이다. 중심지인 대방현(帶方縣)의 관청이 지금의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에 있는 당토성(唐土...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출신의 장군. 도침(道琛)[?~661 또는 662]의 출신이나 가계는 분명하지 않다. 사망 시기는 661년 또는 662년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일대에서 맹괭이 방죽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맹괭이 방죽」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일대에서 맹괭이 방죽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이만광이라는 점쟁이가 소정방에게 의자왕(義慈王)이 있는 곳을 발설한 뒤로 독사에 물려 죽고, 집에도 물이 차 방죽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
삼국 시대 백제의 제30대 왕. 무왕(武王)[?~641]의 성은 부여(扶餘)이며,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다. 백제 제29대 왕인 법왕(法王)[재위 599~600]의 아들이며, 제30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금마(金馬)[현 전라북도 익산시]의 연못에 사는 용과 가난한 어머니 사이에서 무왕이 태어났으며,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
-
충청남도 부여군의 문화 정책과 문화 예술인의 문화 예술 활동. 충청남도 부여군은 금강(錦江) 하류에 있어 예로부터 바다를 통하여 중국, 일본과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특히 부여 지역에 도읍한 백제는 일찍부터 중국 여러 왕조와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문화를 교류하였다. 활발한 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꽃피운 백제의 문화 예술을 일본에 전파하여 일본에서 아스카 문화가 번성하기도 하였다....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백마강으로 회유하는 위어를 잡아서 먹는 회. 백마강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이다. 해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생태 환경의 특성상 어족 자원이 풍부한 내수면 어업의 보고였다. 조선 시대 각종 읍지와 지리지에 기록된 백마강의 대표적인 어종은 위어(葦魚)를 비롯한 숭어[秀魚]·붕어[鯽魚]·잉어[鯉魚]·뱅어[白魚]·농어[鱸魚]·참게[蟹] 등이다. 백마강...
-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에 있는 나루터의 어제와 오늘. 길은 물길이든 뭍길이든 사람이 오가고 물건을 교환하며 정보와 문화를 교류하는 열린 교통로 역할을 한다. 전통 시대에는 하천과 같은 물길을 따라 교통로가 열렸고, 거리가 멀다 할지라도 지역 간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현대사회와는 다르게 수운 교통이 하나의 생활권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부여는 백마강 유역을 따라 비슷...
-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에 있는 나루터의 어제와 오늘. 길은 물길이든 뭍길이든 사람이 오가고 물건을 교환하며 정보와 문화를 교류하는 열린 교통로 역할을 한다. 전통 시대에는 하천과 같은 물길을 따라 교통로가 열렸고, 거리가 멀다 할지라도 지역 간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현대사회와는 다르게 수운 교통이 하나의 생활권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부여는 백마강 유역을 따라 비슷...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오천결사대의 넋을 위령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백제 오천결사대 충혼탑(百濟 五千決死隊 忠魂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의 궁남지 인근에 있는 기념탑이다. 나당 연합군의 협공을 받고 백제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황산벌로 나가 신라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장군 계백과 백제 오천결사대의 우국충절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
-
충청남도 부여군과 공주시에서 매년 9~10월에 개최하는 백제 역사 재현형 축제. 백제문화제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개최하는 세계적인 역사 문화 축제이다....
-
660년부터 663년 동안 백제 유민들이 멸망한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던 운동. 백제 의자왕이 항복을 하자 나당 연합군은 왕도 사비도성과 북방의 웅진성을 점령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백제 고토를 지배하려 하였다. 나당 연합군은 사비도성에 들어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였으며, 특히 항복한 의자왕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등 온갖 행패를 자행하였다. 격분한 백제 유민들이 분...
-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규암마을의 이야기. 규암마을은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읍을 마주한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 있다. 부여의 진산에 해당하는 부소산을 돌아 구드래나루를 지나는 물줄기가 부여읍과 규암면을 가른다. 서쪽으로 가로 놓여 있는 백제교를 건너면 자온대를 지나 규암마을에 이른다. 이러한 백마강과 자온대에 다하여 이중환은 다음과 같이 썼다. “공...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해마다 음력 2월에 전쟁에서 사망한 원혼을 위로하고자 지내는 별신제. 별신제[별신굿]는 2~3년 혹은 10년 주기로 개최하는 ‘대제(大祭)’나 ‘큰굿’을 일컫는다. 마을에서 따라서는 필요할 때 특별히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서해안 및 내륙 지역은 매우 희소한 편이다. 충청남도에서는 부여군...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귀족. 복신(福信)[?~?]의 성은 귀실(鬼室)이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조카이자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사촌동생으로 전한다.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권26 제명기(齊明紀) 6년 조에 기록된 ‘귀실복신(鬼室福信)’이라...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산.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의 북쪽에 해당하는 진산이며, 높이는 106m이다. 금강의 하류에 해당하는 백마강과 맞닿아 있다. 백제 시대에는 부소산을 중심으로 왕성이 설치되어 백제가 사비[현 부여]로 천도하였을 때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통일 신라, 조선까지 행정 치소의 역할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연못 유적.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남쪽 사비도성 내 남쪽 저습지에 있다.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는 궁남지로 추정되는 백제 사비 시기의 연못 유적이다. 1964년 6월 사적 제13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연못 유적.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남쪽 사비도성 내 남쪽 저습지에 있다.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는 궁남지로 추정되는 백제 사비 시기의 연못 유적이다. 1964년 6월 사적 제13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당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념하는 백제 시대 비석. 부여 당 유인원 기공비(扶餘 唐 劉仁願 紀功碑)는 당과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때 당군의 일원으로 전공을 세운 당 장수 유인원(劉仁願)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 부여 석성산성은 현내리 서쪽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한 3중 석축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시대 석조. 부여 석조는 I자형 받침대와 반구형[사발형]의 화강암제 석조로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연꽃을 심는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받침대의 상태는 양호하나 수조는 구연부가 대각선으로 박락된 상태이고, 둥근 기면 일부에도 박락된 상태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터에 있는 백제 시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은 백제 사비 도성의 중심 사찰인 정림사터에 건립한 7세기 오층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두 기의 백제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목탑 형식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조성되는 고려 시대 백제계 석탑의 시원이 된다. 2021년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고 2...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지명. 선사 시대부터 대규모 청동기 마을을 형성한 정치 세력이 자리 잡았고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소국이 있었으며, 4세기 중엽에 백제 영토로 편입된 뒤 538년부터 백제의 새로운 왕도(王都)로 개발되어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 시대의 이름은 소부리(所夫里), 사비(泗沘)였으며, 부여군(...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선정한 부여를 대표하는 10가지 음식. 부여10미는 2019년 11월 3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궁남지(宮南池)에서 ‘부여10미 사비 밥상’ 선포식을 통하여 공식화되었다. 선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하여 무작위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하여 예비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2차 500여 명의 개별 면접 조사를 통하여 역사성과 대중성 및 식음 편의성, 가격...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부여융(扶餘隆)[615~682]의 이름과 자는 모두 ‘융(隆)’이다. 할아버지는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이고, 아버지는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7세기 중엽 백제의 왕자로서 의자왕 때 사비에서 왜(倭)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성은 부여씨(扶餘氏)이고, 이름은 풍(豊) 또는 풍장(豊璋)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운동군의 요청에 따라 661년경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었으며, 663년 백강구전투(白江口戰鬪)에서 백제와 왜 연합군이 신라와 당 연합군에게 전멸당하자 고구려로...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부여효(扶餘孝)[?~?]의 성은 부여씨(扶餘氏)이다.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아들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수. 사걸(沙乞)[?~?]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기에 왕비족(王妃族)으로 급부상한 유력한 귀족 가문인 사씨(沙氏) 출신이다. 사씨는 정치적 기반이 사비 지역이었는데, 538년(성왕 16) 사비 천도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무왕 재위 초기에 사씨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왕...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 왕도 지명. 사비(泗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연원하며, 성왕이 538년(성왕 16)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함으로써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사비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가 사비도성에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두었다....
-
660년 7월 13일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략하여 함락한 사건. 백제는 의자왕 대에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의자왕 2년인 642년 7월에는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았으며, 8월에는 대야성을 공략하여 함락하고, 성주 품석과 품석의 아내와 자식을 베었다. 648년에는 요거성 등 10여 성을 차지하였고, 649년에는 석토성 등 7개 성을 공략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지속...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오번리에서 삼괴정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삼괴정의 세 장수」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오번리에 있던 삼괴정(三槐亭)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백제 시대의 세 장수가 죽은 자리에서 자라난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던 곳을 ‘삼괴정’이라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 3충신을 모신 사당. 삼충사(三忠祠)는 백제의 3충신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그리고 계백(階伯)을 모신 사당이다. 656년(의자왕 16) 백제 좌평이었던 성충은 국가가 위태로움에 처하였음을 알고 의자왕에게 간언하다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죽음에 임박하자 당과 신라를 막을 수 있는 방책을 의자왕에게 바쳤으나 의자왕은 성충의 계획을...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상영(常永)[?~?]은 백제 사비 도읍기인 의자왕 대 중앙 부서에서 활동한 고위 관리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서 부여 석조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석련지와 백제탑」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부여 석조와 정림사지박물관에 있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의 부여 성흥산성과 일곱 명의 왕자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성흥산성과 7왕자」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의 부여 성흥산성(扶餘 聖興山城)[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의 성주였던 윤충(允忠)과 백제 의자왕(義慈王)의 일곱 왕자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성흥산성과 7왕자」는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던 성흥산성에서 윤충이 일곱 왕자를...
-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역사 유적. 부여(扶餘)는 삼국 시대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다. 백제는 538년(성왕 16)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비 천도는 계획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비왕도는 도성제(都城制)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조영되었...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 사비도성에서 건물과 유물에서 구현되었던 신선 세계. 백제 사비도성에는 아침저녁으로 신인(神人)이 서로 왕래하였다는 세 개의 산[삼산]이 있었다. 신인은 신선이면서 산신이기도 하다. 신인 즉 신선이 사는 곳은 인간 세계가 아닌 선경으로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백제인은 신선이 사비도성을 선경으로 변모시키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삼산뿐만 아니라 사비...
-
충청남도 부여군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적량면(積良面)의 양(良) 자와 홍화면(洪化面)의 화(化) 자를 따서 양화면(良花面)이라 하였다고 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역사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 부여 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하였는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부여 지역에서는 외산면과 홍산면의 지표 조사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외산면 반교리에서는 몸돌 1점이, 홍산면 좌홍리에서는 양날찍개 1점이 수습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은산면과 규암면에 신석기 관련 유적이 수습되었다. 은...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예군(禰軍)[613~678]의 성은 예씨(禰氏)이고, 자는 온(溫)이다. 웅진(熊津) 우이(嵎夷)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복(禰福), 할아버지는 예예(禰譽)이며, 아버지는 예선(禰善)이다. 모두 백제의 제1품 좌평(佐平)을 지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는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신라본기 문무왕 10년...
-
660년 11월 5일부터 7일간 왕흥사잠성에서 백제부흥군이 신라군과 벌인 전투. 660년 7월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 의례를 행한 이후 백제 고지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다. 9월 3일 소정방이 의자왕을 비롯하여 백제 왕족 및 백성들을 데리고 당으로 귀국하면서, 사비성에는 유인원과 군사 1만을 남겨 지키도록 하였다. 이에 백제부흥군은 사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공...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웅진도독부 소속 지방 행정 구역. 우이(嵎夷)는 고대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 이민족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는데, 당(唐)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 진격로의 이름을 ‘우이도(嵎夷道)’라 하였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13개 현(縣)을 설치할 때 백제왕도 사비 지역에 설치한 현을 우이현(嵎夷縣)이라...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삼국 시대 당이 설치한 군정 기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한 후 당나라는 백제 고토에 대한 직접 지배를 위하여 통치 기구를 설치하였다. 본래 5도독부를 두려고 하였으나 백제의 격렬한 부흥 운동의 전개로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로 단일화하였다.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함으로써 실질적인 기능은 정지되었으나 웅진도독부가 요동...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유금필 장군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유금필 장군 이야기」는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고려의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941]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유금필은 역사적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나 「유금필 장군 이야기」에서는 백제 장군으로 전승된다. 유금필의 사당인 임천 유태사 묘는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암수리에 있는 유왕산 일원에서 해마다 음력 8월 17일 무렵에 지내는 추모제,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암수리에 있는 유왕산은 백마강에 접한 야트막한 산이다. 한자로는 ‘유왕산(留王山)’ 또는 ‘유왕산(遊王山)’이라고 한다. 전자는 왕이 머무른 산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왕이 즐겁게 놀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유왕산은 백제의 왕과 깊은 관...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의자왕의 왕비. 은고(恩古)[?~?]의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의자왕 말기 사씨(沙氏) 세력의 위상으로 볼 때, 부여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씨 출신으로 추정된다....
-
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
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료이자 장군. 의직(義直)[?~?]은 백제 사비 도읍기에 중앙군의 장군으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임천군은 성주산(聖住山) 남쪽에 위치한 고을로 서천(舒川)·한산(韓山)과 함께 모시를 가꾸기 알맞은 곳이며 모시가 지역의 특산물로서 전국에서 제일인 지역이라고 하였다. 또한 강과 바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며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인접한 곳이라고 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백마강 가에 있는 바위. 조룡대(釣龍臺)는 부소산 아래 백마강에 있는 바위이며, 소정방(蘇定方)이 백제 정벌 시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은 바위라는 전설이 전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의 조룡대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조룡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의 조룡대(釣龍臺)와 관련한 지명 전설이다.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에 쳐들어왔을 때 흰말을 미끼 삼아 백제 왕을 낚아 백제 침공에 성공하였다는 내용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전하는 백제 멸망기 백제인의 저항 의식을 담은 구비 문학. 패망한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유형의 설화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백제 패망의 과정에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거나 방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백제 수호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또 한 가지는 백제 유민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의 설...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전하는 백제 멸망기 백제인의 저항 의식을 담은 구비 문학. 패망한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유형의 설화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백제 패망의 과정에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거나 방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백제 수호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또 한 가지는 백제 유민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의 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무신.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8 「백제본기」에 따르면, 660년(의자왕 20) 8월에 부여풍이 이끄는 백제부흥운동군은 왜국이 보낸 군사 2만 7000명과 함께 힘을 합친 뒤 백강(白江) 어귀에서 나당 연합군과 네 번 싸웠는데, 왜군의 배 400척이 불타고 많은 병사가 몰살하였으며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의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1년(671) 6월 조에는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목 베고 백제 장군 2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6명을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의 석성을 석산현[진악산현]과 같은 곳으로 보기도 한다.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의 파진산 지맥에는 석...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에서 책바위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책바위」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에서 책바위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조의 어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운 전각. 충화 오덕사 어필각(忠化 五德寺 御筆閣)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오덕사(五德寺)에 있다. 선조(宣祖)가 내린 어필을 봉안하기 위하여 오덕사에 세운 전각이다. 오덕사는 중종 때 왕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1509~1533]의 원당(願堂)이었는데, 1570년(선조 3) 안태사(安...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조의 어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운 전각. 충화 오덕사 어필각(忠化 五德寺 御筆閣)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오덕사(五德寺)에 있다. 선조(宣祖)가 내린 어필을 봉안하기 위하여 오덕사에 세운 전각이다. 오덕사는 중종 때 왕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1509~1533]의 원당(願堂)이었는데, 1570년(선조 3) 안태사(安...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백제 8충신 등을 모신 사당. 충화 팔충사(忠化 八忠祠)는 백제 말의 8충신과 황산벌에서 전몰한 오천결사대를 모신 사당이다. 팔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의 3충신과 복신(福信), 도침(道琛), 혜오화상(慧悟和尙), 곡나진수(谷那晉首), 억례복류(憶禮福留)을 말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은 8충신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팔충골’로 불리며, 충화...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백제 8충신 등을 모신 사당. 충화 팔충사(忠化 八忠祠)는 백제 말의 8충신과 황산벌에서 전몰한 오천결사대를 모신 사당이다. 팔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의 3충신과 복신(福信), 도침(道琛), 혜오화상(慧悟和尙), 곡나진수(谷那晉首), 억례복류(憶禮福留)을 말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은 8충신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팔충골’로 불리며, 충화...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의 파진산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파진산 이야기」는 은산당산성(恩山 堂山城) 앞산인 파진산(破陣山)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백제군이 당나라군에게 패한 당산성 앞산이라 하여 ‘파진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파진산성(破陣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파진산(破陣山)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금강이 좁아지는 협곡 부분에 자리하여 사비도성으로 연결되는 금강 길목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진산은 금강을 따라 들어오던 당나라 군대가 백제군 때문에 진을 쳤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석성면과 장암면 사이를...
-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향나무. 향나무[香木]는 나무에서 향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전부터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침향을 만들거나 향을 피우는 데 쓰여 왔다. 향나무는 묵주나 염주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약재로도 쓰이는 등 활용도가 높은 나무이다. 한국에서는 6세기 초 중국 양나라로부터에 향을 피우는 풍습을 들여온 이후 심었다고 전해진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의 어릴 적 이름은 항원(恒元)이다. 선조의 성씨는 부여씨(扶餘氏)였는데, 흑치(黑齒) 지역에 봉해졌으므로 흑치로 바꾸었다. 증조할아버지는 흑치문대(黑齒文大), 할아버지는 흑치덕현(黑齒德顯)이며, 아버지는 흑치사차(黑齒沙次)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흥수(興首)[?~?]는 백제 의자왕 때 제1품 좌평을 지낸 충신이다.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수는 위기를 맞은 의자왕이 귀양지로 사람을 보내 의견을 구한 만큼, 의자왕 즉위 초 왕권 강화를 위하여 성충(成忠)과 함께 적극 노력한 인물로 보인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일대에서 희어대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희어대 전설」에서 ‘희어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의 ‘희어티’라는 지명이 굴절되어 전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희어티’는 지질학적 특성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보이는데, 구비 전승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희어대’라는 지명으로 전한다. 「희어대 전설」은 ‘희어대’라는 지명에 대하여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