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서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28
한자 扶餘 徐氏
영어공식명칭 Buyeo Se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성씨 시조 서융(徐隆)

[정의]

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존을 1세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토착 성씨.

[연원]

부여 서씨(扶餘 徐氏)의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서융(徐隆)[615~682]이다. 이후 서융의 후손인 서존(徐存)[?~?]을 1세조로 하고 부여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부여 서씨는 부여 지역의 토성으로 기록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시대 효자로 서공(徐恭)이 등재되어 있다. 현재는 토착 성씨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주하는 후손이 매우 적어 부여군 남면 삼용리에 유일하게 집성촌이 남아 있다. 부여 남면부여 서씨는 조선 초기 인물인 서이(徐怡)를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현황]

1987년에 발간된 『부여군지』에 따르면 부여군의 부여 서씨는 총 112호이며, 20호 이상 거주지로는 부여읍 20호, 남면 34호로 파악되었다. 삼용리부여 서씨는 1950년대까지는 50여 호가 살았다고 하나, 2010년대 후반에는 약 25호가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부여 서씨 관련 유적으로는 부여군 남면 삼용리에 서이를 비롯한 후손들의 묘소가 다수 남아 있다. 삼용리 마을 입구에는 1886년(고종 23) 10월 효자로 정려를 받은 사헌부감찰 서진우(徐鎭宇)와 동몽교관 서영의(徐榮義)의 명정이 걸린 정려각이 건립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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