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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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東地圖淸道郡地圖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정 |
[정의]
1750년대 초 제작한 『해동지도』에 있는 청도 지역의 지도.
[편찬/간행 경위]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당시에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까지 제작된 지도를 묶어 편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실상 지도를 제작하기 위한 지리적 정보가 모두 같은 시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 지도의 경우 지도와 지도 여백의 설명문에는 1730년대 중반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는 반면, 지도의 뒷면의 설명문에는 1740년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청도군을 포함한 군현 지도의 경우에는 1720∼1730년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그 결과 경상도의 안음현의 경우 무신난(戊申亂)으로 인해 1728년(정조 4)부터 1736년(영조 12)까지 폐지되었기 때문에 제 5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이들 군현 지도들은 『해동지도』를 편찬하기 위해 새롭게 그려진 것이 아니다. 도면의 지도 부분에 오려 붙인 흔적이 있는 것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오려 붙인 원본 지도는 1730년대에 비변사에서 지역 정책을 논의하는 데 활용한 초기 비변사 지도와 동일하다. 비변사 팔도 구관 당상제는 효과적인 지역 파악을 위해 비변사 내에 각 도별 전담자를 두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고, 숙종 때 처음 시도된 이 제도는 영조대 초반인 1730년대에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해동지도』에 실린 군현 지도들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도들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팔도 구관 당상제 자체가 도별 지역 파악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작성된 지도들도 도별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군현 지도에서 지형 지물의 표시 방향, 산계, 수계의 표시 등에 있어서 같은 도 안에서 통일성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도별로 편차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도, 경상도의 모든 군현과 전라도 일부 군현은 호수나 인구수가 모두 표시된 점, 양안상의 토지인 원전답과 실제 경작되는 토지인 실전답 수치가 모두 표시된 점, 건치 연혁에서 토산에 이르는 항목이 포함된 점 등이 공통으로 발견된다.
통일성을 갖춘 이들 군현 지도의 주기는 대체로 1748년(영조 24)∼1750년(영조 26)의 상황까지 반영되어 있다. 1750년의 통계 자료가 경기도 적성현 경작지 면적 기록에 활용되었다는 면에서 『해동지도』의 편찬 시점의 하한선이 된다.
그리고 서울 지도 주기에 훈련도감, 금군 등 군영 관련 내용이 1751년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 점, 1750년부터 시행되는 균역법에 관한 내용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 1751년 초에 폐지된 경상도 7진보에 관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은 『해동지도』의 편찬 시점의 상한선이 된다. 따라서 『해동지도』는 1720∼1730년대의 상황이 반영된 군현 지도를 바탕으로 1750년대 초, 구체적으로는 1750년∼1751년 사이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관찬에서 제작한 『해동지도』는 8책으로 구성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으로, 책 크기는 47×30.5㎝이다. 지도집에는 조선 전도, 도별 지도,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세계 지도인 「천하도」와 외국 지도인 「중국도」, 「황성도」, 「북경 궁궐도」, 「왜국 지도」, 「유구 지도」, 관방 지도인 「요계 관방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8책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와 관방 지도는 회화식 대형 전도이며, 그 이외의 지도들은 도별 지도, 각 도의 군현 지도, 도내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청도군을 포함하여 경상도의 군현 지도는 제5책에 포함되어 있다.
[구성/내용]
18세기 중반 경상도 청도군 일대의 모습을 그린 채색 필사본 군현 지도이다. 읍치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는 산봉우리가 서로 연결하여 그 모습을 가늠하게 한다. 「청도군 지도」에서 산줄기의 모습에서도 회화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있지만, 제1책에 수록되어 있는 「경도 지도」에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모습과 자세히 묘사된 성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도 가운데 위치한 청도군의 읍치는 그 안에 설치된 주요 건물을 표시하기 위해 주변 지역보다 크게 묘사되었다.
읍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은 1591년(선조 24)에 쌓은 것으로, 현재는 거의 다 허물어지고 일부만 볼 수 있다. 읍치 안에는 객사·관아·공북루(拱北樓)·주홀헌(柱笏軒)·제금당(製錦堂)이 청색 지붕에 붉은색 건물로 표시되어 있고, 읍치 밖에는 향교와 서원이 비슷한 모습의 건물로 표시되어 있다. 자계 서원은 1578년(선조 11)에 건립되어 김극일, 김일손, 김대유를 배향하였고 1661년(현종 2)에 사액되었다.
본 지도에 표시된 건물의 방향을 살펴보면 일관성 있게 표현했다기보다는 그 위치에 따라 건물의 방향이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실제 위치하고 있는 건물의 방향 등을 지도에 반영하려 한 것이다.
지도의 여백에는 호구·전결·곡물·군병·건치 연혁·산천·군명·고적·역원·서원·불우(佛宇)·토산 등의 항목과 방위를 표시하는 방면 주기(方面 注記)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지도와 함께 당시 청도군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지도 좌측 하단에 강조되어 표시된 입암, 공암, 낙화암 등은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으로, 회화식 지도에서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산들과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해동지도』 「청도군 지도」는 군현 지도를 중심으로 지도 여백에 지리지를 결합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홍문관이 주도하는 정책 자료 편찬의 전통은 지리지를 중심으로 하고 지도를 부도로 활용한 영조 대 후반 『여지도서』로 결실을 보게 된다. 또한 붉은색으로 표시한 도로를 빼놓지 않고 각 군현지도마다 그려 넣은 점 역시 『해동지도』 「청도군 지도」의 특징이자, 『해동지도』의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해동지도』는 조선 전도, 도별 지도,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세계 지도와 관방 지도까지 포함하고 있는 지도집이다. 그리고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그 의미가 있다. 또한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지도의 특징과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영조 대 군현 지도집의 발달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영조대의 지역 파악과 사회 모습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자, 그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