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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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雲龍將軍影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 1길 2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복수 |
제작 시기/일시 | 1604년 - 이운룡장군영정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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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12월 30일 - 이운룡장군영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운룡장군영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이운룡장군영정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665-2 |
성격 | 초상화 |
소유자 | 이균회 |
관리자 | 이균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에 있던 조선 후기 무신인 이운룡의 영정.
[개설]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은 청도 출신의 무신으로 자는 경명이고, 호는 동계이다. 1585년(선조 18)에 24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유성룡의 천거로 1587년(선조 20)에 선전관에 오르고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로 많은 공을 세운 후 응천 현감에 승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장으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이순신의 순국 후 도총부 부총관, 포도대장, 함경도 병마절도사, 충청도 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고 1610년(광해군 2)에 49세로 세상을 뜬 후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이운룡장군영정은 1604년(선조 37)에 선무공신 3등에 책훈되고 식성군에 봉해졌을 때, 나라에서 초상을 그려 영구히 보존하라는 교서에 의해 제작되었다. 원래 이운룡 장군의 출생지인 매전면 온막리에 상충사를 건립하여 봉안하였다가 1818년(순조 18)에 유령 등 400여 명이 발의하여 이서면 금촌리에 금호 서원을 건립하여 영정을 옮겨 봉안해 왔다.
고종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금호 서원이 훼철되자 1928년 대월산 아래로 이건하여 충효사로 개칭하여 봉안하였고, 1919년 개모하여 구 영정은 청도읍 원정리 흑석에 있는 충현사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영정은 비단 바탕에 채색이 되어 있다. 영정의 크기는 가로 146㎝, 세로 178㎝로 호랑이 모양의 흉배를 부착하고 조선 시대 종이품 벼슬아치가 관복이나 조복에 띠던 띠인 학정금대를 착용하고 있으며, 공신호 책록 당시 이운룡 장군의 품계, 즉 오위도총부 부총관이라는 종이품 품계와 부합된다. 17세기 초 공신 도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주는 가작이다.
[의의와 평가]
이운룡장군영정은 1975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1977년 8월 19일 영정의 원본을 도난당했다. 현재는 작은 흑백 사진과 1950년대에 원본을 모사한 이모본(移模本) 및 원본 도난 시 그림의 주요 부분만 칼로 오려가면서 남은 사방 약 5㎝ 남짓의 비단 조각만 전하고 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