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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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磧川寺木造四天王椅坐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동길 30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궁현 |
제작 시기/일시 | 1690년 -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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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발굴 시기/일시 | 1981년 6월 -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 발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2월 24일 -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 |
성격 | 불상|사천왕상 |
재질 | 목조 |
소유자 | 적천사 |
관리자 | 적천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적천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목조사천왕의좌상.
[개설]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 서방 광목천, 남방 증장천, 북방 다문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불교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는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석존의 열반 후 석존으로부터 불법 수호의 임무를 부여받아 범천 및 제석천과 함께 호법신으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사천왕상이 널리 믿어지고 도상화된 것은 『금광명경(金光明經)』이 유행된 이후부터이다.
목조사천왕의좌상(木造四天王椅坐像)이 있는 적천사(磧川寺)는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828년(흥덕왕 3)에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 왕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1175년(고려 명종 5)에 보조 국사가 중창하고 자련암, 옥련암, 목탁암, 운주암 등의 여러 암자를 세웠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어 1664년(현종 5)에 중건하고, 1694년(숙종 20)에 재차 중수되었다.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은 사찰 입구의 천왕문에 있으며, 불법을 수호하고 악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천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칼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그 뒤로는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왼쪽으로는 서방 광목천왕이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그 뒤로 북방 다문천왕이 당과 탑을 잡고 있다. 사천왕상 조각의 얼굴 표현에 있어서 동방 천왕의 경우는 반쯤 내려감은 불상과 유사한 눈을 나타내고 있으며, 나머지 천왕은 눈을 부릅뜬 눈동자를 하고 위압감을 준다. 코는 주먹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입은 제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모두 삼산형(三山形)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몸에는 천의와 갑옷을 입고 있다. 앉은 모습은 의자에 걸쳐 앉은 듯 의좌상을 하고 있으며, 발밑에는 악귀가 표현되어 있다.
[특징]
사천왕상의 배치 형식은 발로 악귀를 밟고 있으나 얼굴은 험상궂지 않고 해학적인 모습을 하는 등 조선 후기 사천왕상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사천왕상의 자세가 균형 잡히고 갑옷의 표현이 치밀한 우수한 조선 후기 조각에 해당한다. 1981년 6월 사천왕상 보호각 보수 공사 중 사천왕상 속에서 사리, 경판, 의류, 다라니 등 복장 유물과 복장 기록이 발견되어 만들어진 연대가 1690년(숙종 16)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어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