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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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德寺冥府殿石造地藏三尊像-十王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산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궁현 |
제작 시기/일시 | 1678년 - 청도 덕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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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4월 30일 - 청도 덕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도 덕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청도 덕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산1 |
원소재지 | 청도 덕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악산 |
성격 | 보살상|시왕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110∼131㎝ |
소유자 | 덕사 |
관리자 | 덕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덕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지장 삼존상 및 시왕상.
[개설]
덕사의 창건은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상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때이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는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가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라 하여 달아나는 개를 떡을 주어 머물게 하기 위해 절을 지었다. 이 절을 ‘떡절’라 하고, 한자로는 ‘병사(餠寺)’라고 표기하였으나 후에 변화되어 덕사(德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덕사의 명부전(冥府殿)에는 석조 지장 삼존상과 시왕상이 있다. 명부전은 사후 세계인 지옥에서 모든 이를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과 지옥에서 영혼을 심판하는 시왕을 둔 곳으로 죽은 자의 천도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시왕에는 진광대왕, 송제대왕, 염라대왕, 태산대왕, 도시대왕, 초강대왕, 오관대왕, 변성대왕, 평등대왕, 오도륜대왕이 있다. 청도 덕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淸道德寺冥府殿石造地藏三尊像및十王像)은 2007년 4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덕사 명부전에는 석조 지장보살을 중앙에 두고 지옥을 다녀와 인간에게 그 실상을 알려주는 도명존자와 귀계 문을 지키는 무독귀왕이 지장보살이 양쪽에 시립해 있다. 영혼을 재판하는 염라대왕을 포함한 열 명의 시왕은 좌우에 좌상으로 있고 그 옆으로 시왕을 돕는 녹사와 판관, 죽은 사람을 불러오는 시자 두 구가 배치되어 있다.
덕사 석조 지장보살은 높이가 110∼131㎝로 손에 보주를 들고 있다. 옷[법의]은 가장 바깥에 걸친 대의 한 자락이 왼편 어깨를 살짝 덮고 있고 나머지 부분은 오른쪽 팔꿈치를 돌아 복부에서 한 번 반전이 일어나며, 왼편 어깨로 넘어간다. 하반신의 중앙에는 좌우가 균등하게 접힌 대의 형태로 되어 있다.
덕사 시왕은 두상의 비율이 높아 4∼5등신으로 보인다. 대왕들은 대부분 홀(笏)을 쥐고 있으나 경책, 세조대(細條帶) 그리고 수염을 잡고 있는 예도 있다. 홀을 쥔 시왕들은 두 다리를 곧게 내리고 있지만 수염을 쥔 시왕은 반가좌를 하거나 다리를 한 쪽 의자 위에 올려놓은 자세를 취한다. 시왕상은 모두 관모에 도포(袍)를 입은 모습으로 그 위로는 세부 복식의 표현들인 세조대, 광다회, 의대가 도포 위에 있다. 시왕상의 인상은 생생한 표정의 묘사보다는 종교적인 경건함이 강조된 것처럼 경직되고 근엄한 표정들이 주를 이룬다.
[특징]
지장보살 좌상의 하반신에 표현된 옷자락 표현 등에서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승호의 조각 기법의 특징을 엿볼 수 있으며, 본존을 좌우 협시와 비교해서 크게 조성한 점 또한 다른 사찰의 승호가 만든 명부전 존상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승호는 다른 조각승보다 지장보살의 크기를 강조함으로써 보살 자체가 가지는 영험함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경전과 발원문이 포함된 복장 유물을 통해 이 상들이 1678년(숙종 4)에 제작되었음과 본래 화악산 천주사(天柱寺)에 봉안되었던 사실, 제작자, 시주자 등이 밝혀졌다. 이 상을 만든 승호는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조각승으로 1640년에 수화승 청허와 함께 덕유산 연수사 목조 아미타불 좌상[거창 심우사 봉안]을, 1655년에 수화승 도우와 함께 경상북도 칠곡군 송림사 석조 아미타 삼존 불상을 제작하였다. 덕사로 옮겨진 시기와 연유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연대와 제작자가 알려진 조선 후기 조각의 귀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