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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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磧川寺大雄殿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동길 30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정현 |
건립 시기/일시 | 664년 - 청도 적천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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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828년 - 적천사 중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4월 8일 - 청도 적천사 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도 적천사 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청도 적천사 대웅전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 |
원소재지 | 청도 적천사 대웅전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 |
성격 | 불전 |
양식 | 다포계|맞배지붕 |
소유자 | 적천사 |
관리자 | 적천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적천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개설]
적천사는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828년(흥덕왕 3)에 심지 왕사가 중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청도 적천사 대웅전은 천왕문과 조계문을 지나 사찰의 중앙에 남향으로 있다. 좌우에는 적묵당과 명부전이 있고, 뒤에는 좌우로 조사전과 영산전이 있다.
[위치]
청도읍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방면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원리 마을이 나온다. 그곳 입구에서 적천사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을 하면 경부선 철로 밑으로 난 원리 지하차도를 지나게 된다. 언덕길을 따라 능선을 넘으면 다시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을 가로질러 적천사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마을을 통과해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적천사가 보인다.
[변천]
적천사는 664년에 원효 대사가 토굴로 창건한 이후, 828년에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 왕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1175년(명종 5)에는 오백 대중이 상중하는 대가람으로 중건하여 동북쪽에 영산전을 세우고 청련암, 백련암, 자련암, 옥련암, 은적암, 목탁암, 운주암 등의 암자를 세웠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고 1664년(헌종 5)에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694년(숙종 20)에 태허 선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전체적인 모습으로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분적으로는 조선 전기의 기법도 나타난 것으로 보아 정확한 시대는 추정할 수 없다.
[형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 불전이다. 건물은 막돌로 쌓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을 그대로 초석으로 사용한 덤벙 주초를 놓고 배흘림의 기둥을 세워 지붕 가구를 받치도록 하였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그 끝에는 살미가 새겨져 있다. 측면은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을 건 평주(한 층 높이의 기둥) 위에 단평방을 놓고 그 위에 다시 평주를 올려 중도리와 종량을 받도록 하였다. 일반적인 맞배 불전의 측벽 가구에는 측고주((側高柱)가 운용되는데 반해 여기서는 평방 위에 평주가 덧대어 올린 점은 후대 변형된 것으로 추측된다.
내부 천장은 우물 ‘정(井)’자를 여러 개 모은 것처럼 소란을 맞추어 짜고 그 구멍마다 네모진 널조각의 판을 얹어 만든 소란 반자로 만들어 내부의 장엄성을 높였으며, 전면과 후면은 경사가 진 빗천장의 형태를 띤다.
대웅전 내부에는 1632년 목재로 된 석가모니불 좌상과 아미타불 좌상이 좌우에 봉안되어 있으며, 뒤쪽 탱화는 「영산회상도」로서 아래 옥련암이라는 연기가 있어, 옥련암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한다.
[현황]
청도 적천사 대웅전은 2012년 현재 지붕의 하중으로 인한 내려앉음 현상으로 보와 도리에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대웅전 앞 당간 지주도 마찬가지다. 또한 기둥도 상부 구조의 하중으로 인해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디딤석은 파손되어 보수한 흔적을 보인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