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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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雲門寺東-西三層石塔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진관스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0년 9월 16일 -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678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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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
성격 | 석탑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540㎝ |
소유자 | 운문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있는 석탑.
[개설]
운문사 비로전 앞에 서 있는 동서로 서 있는 통일 신라 때 석탑으로 1980년 9월 16일 보물 제67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2단의 기 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규모와 양식이 동일하다.
[건립 경위]
930년 보양 국사(寶壤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해 용왕이 보양 국사를 용궁으로 맞아들여 금빛 비단 가사 한 벌을 주면서 용왕의 아들 이목에게 보양 국사를 모시고 가 작갑(鵲岬)에 절을 짓도록 부탁하였다. 이에 보양 국사가 폐사를 일으키고 호고산 금수동에서 내려다보니 까치가 땅을 쪼고 있었다. 보양 국사는 용왕이 작갑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그 곳을 파보니 예전의 전돌이 나왔다. 이것을 모아 오층탑을 조성하고 절을 세워 작갑사라 했는데 지금은 작갑사(鵲岬寺) 전탑은 거의 없어졌다.
한편 비로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전복하기 쉬운 작은 배 같다고 하여 지세를 누르기 위해 고려 때 비로전 앞에 쌍탑을 세워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탑의 양식으로 보아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운문사 비로전 앞에 동탑과 서탑 두 기가 나란히 서 있다.
[형태]
두 탑의 형태는 동일하고 높이는 540㎝이다.
하층 기단은 낮고 넓게 조성되어 안정감을 주려 했다. 상층 기단은 상대적으로 높게 제작하여 다소 넓은 면석을 마련해 놓았는데, 면석에는 불교의 수호신인 팔부중상을 조각했다. 이와 같이 석탑의 기단부의 탑신에 부처님을 외호하는 사천왕, 인왕, 팔부중, 십이지신장 등의 신장들을 표현한 시기는 9세기이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돌의 하단에는 5단의 받침이 조성되어 있어 불국사 석가탑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지붕돌 끝부분이 반전을 이루어 하늘을 향해 살짝 들어 올린 모습인데, 이는 목조건축의 처마를 돌로 표현하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가 남아 전하는데, 석탑 건립 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기단부의 훼손이 심하여 보수했는데, 이때 팔부중상의 일부가 새로운 석재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특징]
탑신에 부처를 외호하는 사천왕, 인왕, 팔부중, 십이지신장 등의 신장들을 표현한 9세기경의 시대적인 흐름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작압전 내 사천왕상, 금당 앞 석등과 더불어 통일 신라 당시 운문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석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