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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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湧泉寺洞下道路修治頌功表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783-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궁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3월 23일 - 용천사동하도로수치송공표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9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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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용천사동하도로수치송공표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용천사동하도로수치송공표석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783-2 |
성격 | 비 |
관련 인물 | 순기(順基)|순식(順式)|재찰(在察)|재원(在元)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너비,두께) | 200㎝[높이]|97㎝[너비]|45㎝[두께] |
소유자 | 용천사 |
관리자 | 용천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표석.
[개설]
표석(表石)이란 특정한 지역이나 영역을 표시하는 돌이나 비석 혹은 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등을 적어 무덤을 표시하는 돌을 말한다. 용천사동하도로수치송공표석(湧泉寺洞下道路修治頌功表石)은 길이 험난하여 용천사 승려들이 자비를 들여 길을 평탄하게 정리한 것을 칭송한 내용의 비석이다.
용천사는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 대사가 창건하여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1267년(고려 원종 8)에 일연 선사가 중창하고 불일사(佛日寺)라 하였다가 다시 용천사(湧泉寺)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1631년(인조 9)에 영조 대사(英祖大師)가 다시 중창하고, 1805년(순조 5)에 의열 화주(義烈和主)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건립 경위]
용천사동하도로수치송공표석은 각북면 오산리 용천사 아래 길이 험난하여 오가는 사람들이 다니기 어렵자 용천사 승통 행준(僧統 幸俊)이 재산을 털어 승려 순기(順基), 순식(順式), 재찰(在察), 재원(在元)으로 하여금 길을 수리하게 하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이 공적을 칭송하고 표시하기 위하여 1725년(영조 1) 3월에 순해가 글씨를 쓴 비석을 건립하였다.
[위치]
각북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02호선을 따라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방면으로 가면 오산리이다. 용천사에서 청도군 각북면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왼쪽 첫 번째 오산 주유소 옆 도로변에 놓여 있다. 표석이 위치한 곳에서 서북쪽으로는 용천사와 용천사 부도 떼가 있다.
[형태]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호패 형태로 비문이 있는 면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나머지 면은 대강 다듬어 형태만 갖추었다. 비문은 13행 150여 자가 해서체로 각자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200㎝, 너비 97㎝, 두께 45㎝이다.
[금석문]
용천사 승통인 행준의 주도하에 승려 순기, 순식, 재찰, 재원 등이 공역과 물자를 충당하여 험난한 도로를 수리한 공적을 기록하였다.
[현황]
오이 마을 오산 주유소 바로 아래쪽 밭에 위치하고 있는 표석은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2006년 3월 2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12년 현재 문화재 안내판은 설치되어 있으나, 유물을 보호하는 장치는 없다.
[의의와 평가]
비석은 손상된 곳이 없는 완형으로 글씨가 아름답고 깊이 새겨져 있어 금석문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조선 시대 교통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