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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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國遺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저술 시기/일시 | 1281년 - 『삼국유사』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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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 시기/일시 | 1281년 - 『삼국유사』 편찬 |
간행 시기/일시 | 1310년 - 『삼국유사』 간행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5년 4월 1일 - 삼국유사 권3~5 보물 제418호로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2003년 2월 3일 - 삼국유사 권3~5 국보로 승격되면서 보물 제418호 해지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2월 3일 - 삼국유사 권3~5 국보 제30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0월 19일 - 삼국유사 보물 제419-5호로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2003년 4월 14일 - 삼국유사 국보로 승격되면서 보물 제419-5호 해지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4월 14일 - 삼국유사 국보 제306-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삼국유사 국보 재지정 |
소장처 | 서울 대학교 규장각 -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림동 산56-1 |
성격 | 역사서 |
저자 | 일연 |
권책 | 5권 2책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고려 시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 주지였던 승려 일연이 저술한 역사서.
[개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1281년(고려 충렬왕 7년)에 승려 일연(一然)이 운문사 주지로 있을 당시 저술한 역사책으로, 현존하는 우리 고대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신라·백제·고구려 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및 위만 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사적, 신화·전설·시가(詩歌)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일연이 청도 운문사 주지와 용천사 주지로 있으면서 만년에 저술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여 청도 지역의 삼국 시대에 대한 기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서술되어 있다.
[저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무인 정권기인 1206년에 경상도 경산에서 아버지 김언필(金彦弼)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9세 때 출가하여 14세에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의 대웅 장로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대구 비슬산에서 20여 년 동안 수행하고 전국 여러 사찰의 주지가 되었다. 강화도 선원사, 포항의 오어사, 비슬산의 인흥사를 거쳐 72세 1227년에 운문사의 주지가 되었다. 운문사의 주지로 주석하던 1277년부터 1281년까지 선풍을 크게 진작시켜 ‘운문 화상(雲門和尙)’으로 불리었다.
[편찬/간행 경위]
일연은 운문사로 오기 전 비슬산 인흥사의 주지로 있었던 1264년부터 1274년까지 『삼국유사』 찬술을 위한 예비 작업으로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대 연표를 작성하였고, 운문사 주지로 있을 때인 1278년에 간행하였다. 이 역대 연표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운문사 주지로 주석하던 시절 『삼국유사』 찬술의 본격적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이후 말년의 하안소이었던 인각사에서 완성하게 된다.
[형태/서지]
낙장이 없는 유일본 중 하나인 규장각 소장본 『삼국유사』는 1512년(중종 7) 경주부 윤(慶州府尹) 이계복(李繼福)이 중간(重刊)한 목판본으로, ‘중종 임신본(中宗壬申本)’ 또는 ‘정덕본(正德本)’이라고 불린다. 현전하는 완질본 중에서는 간행 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동일한 완질본이 고려 대학교 도서관과 일본 천리 대학(天理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규장각 소장본은 결장이 없는 유일한 책인 동시에 같은 판본 중에서도 인출(印出) 시기가 가장 빠른 판본으로 평가된다.
규장각에 소장된 삼국유사는 왕력(王曆)과 권 제1∼5까지 5권을 2책으로 묶은 것이다. 권별로는 왕력(王曆) 15장, 권 제1 37장, 권 제2 49장, 권 제3 56장, 권 제4 31장, 권 제5 30장, 발문(跋文) 1장으로 총 219장이다. 형태적인 면으로 볼 때 이 책은 발문 1장을 제외한 전체 218장 중에서 광곽(匡郭)의 길이가 선초본(鮮初本)에 비하여 평균 1㎝ 내외 짧고, 변란(邊欄)은 선초본이 모두 쌍변(雙邊)인데 반하여 이 책을 포함한 중종 임신본은 쌍변과 단변이 혼재되어 있다.
이외 『삼국유사』의 신간본(新刊本)으로는 1908년 간행된 일본 도쿄 대학[東京大學] 문학부[文學部]의 사지총서본(史志叢書本)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조선 사학회본(朝鮮史學會本)과 계명 구락부(啓明俱樂部)의 최남선 교감본(校勘本) 및 그의 증보본이 있으며, 그 밖에 1921년 안순암(安順庵) 수택(手澤)의 정덕본을 영인(影印)하여 일본 교토 대학 문학부 총서 제6에 수록한 것과 고전 간행회본(古典刊行會本)이 있다. 8·15 해방 후로는 삼중당본(三中堂本), 1946년 사서 연역회(史書衍譯會)에서 번역하여 고려 문화사에서 간행한 국역본, 이병도(李丙燾)의 역주본(譯註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동서 문화 센터의 이학수(李鶴洙) 영역본과 1954년 『역사 학보(歷史學報)』 제5집의 부록으로 이홍직(李弘稙)의 「삼국유사 색인」이 발간된 바 있다.
[구성/내용]
전체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권 내에서 다시 9편으로 구분된다. 권1 왕력(王歷) 제1은 간략한 제왕의 연대기로 중국 역대 왕조를 기준으로 작성한 연대표이다. 권1에 「왕력(王曆)」 제1과 「기이(紀異)」 제1을, 권2에 「기이」 제2를, 권3에 「흥법(興法)」 제3과 「탑상(塔像)」 제4를, 권4에 「의해(義解)」 제5를, 권5에 「신주(神呪)」 제6과 「감통(感通)」 제7과 「피은(避隱)」 제8 및 「효선(孝善)」 제9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이 중 『삼국유사』에서 청도와 관련된 역사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된 내용이 전하고 있다.
- 이서국 조에 제3대 노례왕 14년[38]에 이서국이 금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제3 노례왕 조에 노례왕 18년[42] 이서국을 쳐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미추왕 죽엽군 조에 이서국이 금성을 공격함에 죽엽군이 나타나 이서국 군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 원광 서학 조에 원광 법사와 화랑의 세속 오계, 운문사와 가슬갑사 등에 관해 기록이 남아 있다.
- 보양 이목 조에 운문사와 폐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당시 사서를 찬술하는 규범에서 벗어나 체재가 부정연하고 내용의 연괴·잡다함이 오히려 오늘날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역사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2003년 4월 14일 국보 제306호, 국보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