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12 |
---|---|
한자 | 李顯命 |
영어음역 | Yi Hyeonmyeong |
이칭/별칭 | 여회(如晦),초당(草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유생 |
---|---|
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
성별 | 남 |
생년 | 1658년 |
몰년 | 1740년 |
본관 | 광주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 유생.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여회(如晦), 호는 초당(草塘). 고려 때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이집(李集)을 중흥시조로 하고,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낙촌 이도장(李道長)의 손자이고 참봉 이원지(李元祉)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주정씨, 부인은 파평윤씨이다.
[활동사항]
1658년(효종 9)에 태어나 1677년(숙종 3)에 23세의 나이로 생원시에서 장원을 하였다. 문장과 행실이 일찍이 드러나 평판이 자자하게 성대하였다. 1719년(숙종 45)에 방례(邦禮)에 대해 소(疏)를 올리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대법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증손 이동급(李東汲)이 비갈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