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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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胤文 |
영어음역 | Jo Yunmun |
이칭/별칭 | 종백(宗伯),죽헌(竹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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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
성별 | 남 |
생년 | 1701년 |
몰년 | 1762년 |
본관 | 창녕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종백(宗伯), 호는 죽헌(竹軒)이다. 창녕조씨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사위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신라 말에 아간시중(阿干侍中)을 지내고 고려 태조의 딸과 결혼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조윤문(曺胤文)은 창녕조씨로 성주목사를 지내고 창녕에서 팔거(八莒)[현 칠곡]로 이거하여 정착한 석당(石塘) 조세우(曺世虞)의 후손으로 조경(曺儆)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701년 칠곡군 동명면에서 출생하였다. 문정공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스승이 시(詩)를 주었는데 “늙은 눈을 소나무 아래 집에서 우연히 열어 그대의 높은 품격이 티끌세상을 벗어났음을 알았네. 귓가에는 가만히 참 경계의 말을 듣기를 바랐는데 분수에 지나치게 받들어 모심을 받으니 어찌 편안 하리오? 유학하러 온 어진 제자 이름이 이미 부끄러우나 술병 들고 오는 좋은 벗이 오는 것은 이에 기뻐하노라. 금오산의 빼어난 빛이 도리어 손님을 맞이하니 다음 날 기로(岐路)에 임하면 뜻을 다스리지 못하리라.”라고 하였으며, 세 아들이 모두 효성과 우애로 이름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