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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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製絲株式會社 |
이칭/별칭 | 대구제사공장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18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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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32년![]() |
최초 설립지 | 산십제사주식회사 -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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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제조업체 |
1918년 2월 대구광역시에 일본인이 설립한 제사 공장.
대구제사주식회사(大邱製絲株式會社)는 제사 공업의 최적지로 알려진 대구에서 제사를 생산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본의 거대 제사 자본은 잠사업(蠶絲業)이 발달하고 유휴노동력이 풍부한 대구에 1918년과 1919년 잇따라 거대 제사 공장을 설치하였다. 대구제사주식회사는 1918년 2월 중구 동인동에서 산십제사주식회사(山什製絲株式會社)로 설립되었다. 1932년 ‘산십제사주식회사’에서 ‘대구제사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18년 산십제사주식회사에서 생산한 제사량(製絲量)은 5,500관[2만 625㎏]에 환산 가격은 82만 5000원에 달하였고, 1920년 부수(釜數)는 650개, 노동 인력은 900명 정도였다. 제사의 원료는 경상북도 지역에서 70% 정도를 충당하였고, 나머지는 일본 기타큐슈[北九州]와 나가노[長野] 등지에서 충당하였다.
대구제사주식회사를 비롯하여 조선생사[조선생사주식회사]와 편창제사주식회사(片倉製絲株式會社) 등 세 곳의 제사 공장은 공장의 규모나 생산량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공장이었으며 1935년 조선 전체 기계 제사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하였고 생산된 제품의 40% 정도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1935년 세 곳의 제사 공장에 고용된 조선인 노동자는 약 2,000명에 달하였고 대부분 15세~17세의 여공들이었다. 여공들의 20%가 대구와 달성군 출신이었고 80%는 군위, 경산, 칠곡, 선산, 김천, 청도, 상주, 밀양 등지였다. 나이 어린 여공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하였다.
조선을 대표하는 제사 공장이었던 대구제사주식회사는 대구의 제사 공업을 주도하며 대구가 섬유산업의 중심 도시가 되는 데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