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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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里 四孝堀 |
이칭/별칭 | 사효자굴(四孝子窟),사효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산1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창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곽재훈의 아들 네 명의 효행과 관련 있는 석굴.
조선 시대의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의 사촌형 곽재훈(郭再勳)에게는 곽결(郭潔), 곽청(郭淸), 곽형(郭泂), 곽호(郭浩)의 네 아들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들 사 형제는 병환 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비슬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 숨어 피란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기침병으로 인해 지나가던 왜군에게 발각되었고, 사 형제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동굴 밖으로 나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곽재훈만 살아남았다. 이에 왜적이 사 형제의 효행에 감동하여 곽재훈에게 '사효자지부(四孝子之父)'라는 패를 써 붙여 놓아 주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사효굴(四孝堀)'이라 이름하여 사 형제의 효성을 추모하였고, 나라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내렸다.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9호인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玄風郭氏十二旌閭閣)에 '효자 유학 곽결 곽호 곽청지려(孝子幼學郭潔郭浩郭淸之閭)’라는 편액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쪽이나 달서구 대곡동에서 유가읍으로 연결되는 테크노폴리스 진입 도로에서 유가사(瑜伽寺)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사효교가 나오는데, 이 사효교의 좌측에 '사효자굴 150m'라는 안내판과 사효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조금 가다 보면 양리 사효굴(陽里四孝堀)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오는데 위쪽으로 60m를 더 가면 석굴이 나타난다.
양리 사효굴은 일반적인 동굴의 형태는 아니고 큰 바위가 사방을 막고 있는 형태이다. 중간에는 약간의 공지가 있고, 북쪽 바위에는 뒤쪽으로 연결되는 좁은 공간이 있다. 북쪽 바위 면에 '사효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의 자경(字徑)은 가로 20㎝, 세로 24㎝, 깊이 0.2㎝이다. 현재 양리 사효굴에는 달성군에 의해 설치된 계단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