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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지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539
한자 大韓輿地圖
영어공식명칭 Daehanyeojid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주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900년 전후 추정 - 「대한여지도」 작성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성격 근대 지도
용도 학교 교육용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일대가 표기된 대한제국기에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국지도.

[개설]

「대한여지도」는 대한제국기에 전국 지도로 제작한 지도이다. 대한제국의 학부편집국에서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발급 경위]

「대한여지도」는 제작 연대는 정확하지 않고 작자도 알 수 없다. 다만, 대한제국기 학부편집국에서 학교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학부편집국에서 1900년 만든 세계지도와 종이의 질이 같고, 지형의 표현에도 서양에서 도입한 우모식(羽毛式)을 같이 사용하고 있어 시기와 사용처를 추정하고 있다. 약 70만분의 1 축척의 지도로 길이 175㎝, 너비 97.5㎝의 괘도로 제작되었다.

전국을 13도로 구분한 것으로 보아 8도에서 13도로 개편한 1896년 이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충청북도의 관찰부가 충주에 있는 것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908년 이전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학부편집국에서는 이미 1899년 경위선이 들어 있는 「대한전도」를 제작했었고, 1900년에 세계지도도 만들었기 때문에 「대한여지도」도 1900년 전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형태]

「대한여지도」는 175㎝×91.5㎝의 규격으로 2020년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다.

[구성/내용]

「대한여지도」의 윤곽은 「대한전도」보다는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전도」에 가깝고, 지도의 내용도 유사하다. 도로망은 「대한여지전도」보다 자세하게 각 군·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기입한 것으로 보이나 이수(里數)에 있어서 일부 차이가 있다.

「대한여지도」는 조선 시대의 우리나라 지도에 서양 지도학의 기법을 가미하였는데, 지도의 윤곽·도로망·지명 선정 등은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와 비슷하지만 지형 표시를 우모식으로 한 것과 대마도(對馬島)의 윤곽을 일본 지도에서 옮긴 것 등은 외래의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전국을 13도로 나누어 각각의 테두리에 색깔을 칠했으며 동해의 빈 부분에 서울의 상세지도인 「한양경성도(漢陽京成圖)」를 삽입하였다.

2020년 현재의 동작구는 1895년(고종 32)에 과천현(果川縣)과천군(果川郡)으로, 금천현(衿川縣)에서 시흥군(始興郡)으로 바뀌었는데 「대한여지도」에서도 과천과 시흥으로 표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한여지도」는 1896년에서 1908년 사이의 동작구 일대의 지리적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http://kyu.snu.ac.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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