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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토성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572
한자 果川土姓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인배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해당하는 조선 시대 경기도 과천현의 토착 성씨.

[개설]

과천 토성은 조선 전기 기록에 보이는 경기도 과천 지역 토착 성씨를 말한다.

[연원]

‘토성(土姓)’은 군현의 구획단계에서부터 해당 군현을 본관으로 삼은 토착 지배 족단을 의미한다.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토성은 고려왕조의 건국과정에서 지배세력의 근간이 되었고, 점차 재지사족으로 기능하였다고 한다. 즉 지방 토성이 중앙으로 진출하면 귀족 관료가 되고, 지방에 토착하면 향직을 받아 해당 지역의 직임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유학자인 성현(成俔)[1439-1504]이 쓴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우리나라 거족은 모두 주군의 토성에서 나왔다.[我國鉅族皆自州郡土姓而出]”라 기록되어 있어, 이러한 현상은 조선 초기까지도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의 개창 이후 지배세력의 변동과 군현의 개편, 지역민들의 대규모 이동으로 말미암아 토성은 점차 무의미해지고, 현재의 인식처럼 성씨는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본관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토성의 개념은 조선왕조실록에 절대 다수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편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연산군 이후의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또 1481년 완성된 『동국여지승람』 각 지역 성씨조를 비롯하여 이후 토성의 개념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황]

『세종실록(世宗實錄)』 권148 지리지 경기 광주목 과천현 편에 따르면 과천현의 토성(土姓)은 4성으로 손(孫)·이(李)·전(田)·변(邊)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망성(亡姓)을 신(愼)·안(安)·최(崔) 3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세종실록』이 편찬된 1454년 무렵 과천현에 손·이·전·변의 4성이 토성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신·안·최의 3성은 이전 시점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증보 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비롯한 읍지류에서는 토성과 망성을 구분하지 않고 상기 7성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토성이 본관으로 유지되어 현재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지만, 과천 토성의 경우 거의 소멸되었고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과천 손씨 총 4가구 13명, 과천 전씨 168가구 493명이 보고된 바 있다. 또한 과천의 토성 중 현재의 동작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토성의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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