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20 |
---|---|
한자 | 小雪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봉미산안길7번길 11-19[설곡리 69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초기 |
집필자 | 방문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7월 - 보우의 탑비 편, 소설암 터에서 발견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9월 - 소설암 터,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8월 30일 - 소설암 터 지표 조사 종료 |
소재지 | 소설암 터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봉미산안길7번길 11-19[설곡리 691] |
성격 | 절터 |
소유자 | 동래 정씨 |
[정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있는 고려 후기 승려 보우가 머물렀다고 추정되는 절 터.
[개설]
소설암 터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있는 절 터이다. 고려 후기 승려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1301~1382]가 소설암(小雪庵)에서 머물다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등에는 소설암에 권근(權近)[1352~1409]이 찬한 탑비가 있다고 전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소설암 터는 2001년 7월 매몰되어 있던 보우의 탑비 편이 폭우로 인해 발견되면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비 편을 수습한 마을 주민 박창신이 사나사 승려 화암 일행에게 제보하면서 세간에 알려졌고, 이후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 30일까지 지표 조사를 진행하였다. 소설암 터를 중심으로 석종형 승탑 1기, 탑비 편 1점, 방형으로 다듬어진 석재 1점이 발견되었고, 주변 민가 일대에서 기와 편, 자기 편, 토기 편 등이 수습되었다.
석종형 승탑은 민가의 오른쪽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데, 크기는 최대 지름 570㎜, 높이 880㎜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원추형이고, 아래쪽은 지름 205㎜, 깊이 50㎜의 둥근 홈이 파여 있다. 당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승탑은 태고암 원증국사탑이나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형 승탑처럼 주인공을 직접 알려주는 당호명이 없거나 상륜부가 정형화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소설암 터의 석종형 승탑도 당호명이 없고 상륜부도 정형화되지 않아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탑비 편은 붉은색 화강암을 다듬고 갈아서 앞뒷면에 비문을 각각 새겼고, 옆면에는 새김이 없다. 비 편은 가로 67.5㎝, 세로 69.5㎝, 두께 12.2㎝로, 전체의 약 1/4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인 가능한 글자 수는 170여 자인데, 뒷면에 조성에 참여한 인물을 중심으로 약 140여 자가 쓰여 있다. 비신의 네 귀퉁이에는 음각으로 주연(周緣)을 두른 후 비문을 새겼는데, 고려 시대에 조성된 비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건립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사에 의하면 1390~1394년으로 추정된다. 석재 1점은 석등의 하대석과 같은 석조 유물이 뒤집혀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소설암 터는 현재 건물 터의 흔적이 불확실하다. 민가가 한 채 있는데, 민가 바로 위쪽에 2004년에 세운 임시 가건물이 있고, 그 뒤로 돌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가 있다. 민가 왼쪽에는 반월형으로 둥글게 돌로 쌓아 올린 샘터가 있으며, 도랑을 만들어 밑으로 물이 흘러 다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소설암 터 일대는 동래 정씨의 소유이며, 절 터 뒤쪽 능선을 따라 동래 정씨의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절 터 내부에 민묘 2기가 있으나 경내를 많이 훼손하지는 않았다.
[의의와 평가]
소설암 터는 그간 실체가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보우의 탑비 편이 발견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탑비 편은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보우의 것이 확실하며, 석종형 승탑 역시 보우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