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고암산의 각시앙골에 있던 각시샘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신성리의 고암산 바로 아래 칠성동마을에 1970년대까지 각시샘이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 고암산 아래를 ‘각시앙골’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각시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없앴다고 전한다. 각시샘에서 물을 마시면 자...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 뒷산에 있는 관음정, 부처꽃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갑리 독곡마을 뒤쪽 운곡 습지로 가는 길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관음정(觀音井)이 있다. 오래 전 불심이 깊은 불자가 매일 아침 이 관음정에서 물을 떠서 감로수(甘露水)로 공양을 하였고 ‘부처꽃’이라 불리는 꽃을 부처님께 봉양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관음정(觀音井)과 부처꽃」...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에서 마을 사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갑리 독곡마을에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전하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전하동이 땔감을 구하러 인근 산에 오르다가 노루를 만났다. 그러나 전하동은 노루를 잡다가 노루를 놓치게 되고, 띠꾸리[지게에 짐을 묶는 줄]까지 잃게 되자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입버릇처럼 “노야, 노야, 갈려거든 띠...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에서 개 무덤 비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언젠가부터 대흥리 가비동을 개비골로도 부르는데, 개의 무덤 비석[犬碑]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개의 무덤 비석은 가비동 마을 앞 고추밭에 가로로 45°쯤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다. 원래는 비석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2020년 현재는 높이 1m가 안 되는 비석 하나...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에서 황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갑리 독곡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마을 앞 인천강[주진천]에서 황새가 물고기를 잡아 먹은 이야기를 하던 중 도둑이 들어와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둑은 할머니가 황새를 잡는 상황 이야기가 마치 도둑 자신에게 말하는 줄 알고 성급히 도망을 갔다는 내용이다. 「도둑을 물리친 황새 이야기」는...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에서 솟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갑리 독곡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마을 주민들이 솟대를 세워 도깨비 형제의 심술에 맞섰다는 내용이다. 「백학산 도깨비 형제 이야기」는 2020년 4월 5일 하갑리 독곡마을 주민 강신교[남, 72세]에게서 채록하였다. 독곡마을 백학산 봉우리 두 개에는 도깨비 형제가 각각 살고 있었다. 형제는...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소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포리 사포마을 안 짐대와 해수탕 중간 지점에 소나무 두 그루가 늘 푸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소나무 두 그루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한 그루로 보여 ‘이일송(二一松)’이라고도 한다. 1900년대 초 청나라 ‘청송(靑松)’과 주막집 딸 ‘명주’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일송(二一松)」은 2011년에 출간...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에서 장자라는 구두쇠와 관련된 연못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 앞에는 고창천과 주진천이 합류하는 쌍천이 있다. 이 쌍천은 인천강(仁川江)이 시작되는 지점인데 부근에 2,500여 평[약 8,264㎡] 규모의 ‘장자못’이 있다. 「인천강 장자못」은 이 장자못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인천강 장자못」은 200...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에서 거북바위[칠성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산림리 낙산마을은 제성산(帝城山)으로, 동래 정씨가 신령의 계시를 받고 자력(磁力)을 띠는 돌을 가져다 두었다고 한다. 이 돌이 바로 제성산에 있는 거북바위로 윤도장이 방위각을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거북바위는 일명 ‘칠성바위’라고 하며, 장군이 전투를 하면서 일곱 명의 장수...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마을에서 신라 김유신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계산리 사신원(四信院)마을은 옛날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사신들이 묵었던 숙박 시설인 사신원이 있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사신원은 무장현에 있던 원(院)으로 사신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인천강[주진천]을 건너다녔다고 한다. 「할매바위 오은굴과 김유...
-
구암리 구수마을에서 고추는 효자 작물이다. 용돈도 벌고 가용으로도 쓰고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추는 우리 밥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작물이다. 고추가 없는 우리의 식단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구수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점점 더 수입 고춧가루가 우리의 식단을 장악해 가고 있지만, 일손이 없어 고추...
-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 사는 전윤오[1938년생] 씨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역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수마을 역병 이야기는 정말로 한 마을에 불어 닥친 엄청난 불행이자,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어릴 적에 그는 그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내가 열네댓 살 먹었을 때 들었던 것 같혀. 당시에 여러 곳에서 온 동학군들이 많이 모였던...
-
농촌 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은 아마도 아름드리 정자나무 밑에 다소곳하게 세워져 있는 모정(茅亭)[여름철 마을 주민이 더위를 피하고 휴식하기 위해 세운 마을의 공유ㆍ공용 건물]일 것이다. 한여름 오후 모정 위에서는 마을 어른들이 빙 둘러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면, 그보다 더 시원하고 목가적인 여름철 풍경은...
-
공음면 구암리는 본래 무장군 동음치면에 속해 있었는데,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구암(龜岩)’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을 새롭게 고치면서 동음치면 덕음리(德音里)ㆍ구수리(九水里)ㆍ장동리(壯洞里) 전체와 성재리(聖才里)ㆍ다옥리(多玉里) 일부, 하리면(下里面) 택동리(宅洞里)와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면(弘農面) 덕림리(德林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리(龜岩里)...
-
공음면 구암리의 1년은 여느 농촌 마을과 비슷하다. 연초에는 영농 경작을 준비하는 단계이다.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거나 마을 총회를 통해 영농기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2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한여름에는 당산나무 그늘이나 마을회관에서 수박이나 백숙으로 삼복더위를 식힌다. 가을...
-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운동으로 민족ㆍ민중 운동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이다. 고부에서 싹튼 농민 봉기의 불씨가 이 마을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것이다. 1894년 3월 20일[음력] 구수마을에 모인 동학 농민군들은 만천하에 ‘창의 포고문’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구수마을은 농민 봉기가 혁명으로 전개된 역사적인 곳이...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은 경주최씨 최문세(崔文稅)[1610~?]가 말을 타고 들어와서 이룬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문세는 고운 최치원의 24세손으로, 1655년 장성군 황룡면에서 살다가 마래마을로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현재까지 12대를 이어오고 있다. 마래마을 삼거리에 있는 삼효각은 경주최씨 집안의 3대째 이어 온 효행을 기리고 널리 알리어 후세 사...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입구 샘거리에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전에는 훨씬 더 많았는데 도로를 내고 주유소를 지으면서 상당수가 땅 속에 파묻혔다고 한다. 경주최씨 삼효각을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가는 도중에 최대기[1938년생] 씨가 그 중 한 개의 고인돌을 가리키며 말바우와 되바위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었다. 말바위와 되바위 이야기는 ‘장수굴...
-
친구란 구수한 된장국처럼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그런 것이다. 하물며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깨복쟁이’ 친구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그 친구들은 서울로 광주로 고창읍으로 모두 흩어져 살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으로 향해 있을 것이다. 「그리운 언덕」이라는 동요의 노랫말처럼. 내 고향 가고 싶다 그리운 언덕/ 동무들과 함께 올라 뛰놀던 언덕/ 오늘도 그 동무들 언덕...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때에 따라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1970년경까지만 해도 모내기를 할 때는 ‘못방구’라고 하여 농악패가 논두렁에서 굿을 치면 모를 심는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노동의 고단함을 잊었다고 한다. ‘풍장’[풍물놀이라고도 하는데, 농촌에서 농부들 사이에 행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으로 나발, 태평소, 소고, 꽹과리, 북, 장구, 징 따위를 불거...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2010년 3월 15일[음력으로 정월 그믐] 해가 질 무렵 마을회관을 찾았더니,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전부터 마을 이곳저곳과 당산제 지낼 장소인 할머니당산 주변을 청소한 후 할머니당산, 할아버지당산, 말바위당산, 큰샘당산에 인줄[새끼를 왼쪽으로 꼬아 백지를 끼운...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 줄다리기를 한다. 정월 그믐 낮부터 당산제를 준비하기 시작해 2월 초하루 새벽에 제를 지내고 나면 금세 동쪽 하늘에서 동이 터온다. 그러면 아침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짚 다발을 가지고 하나둘씩 마을회관으로 모인다. 오전 10시경, 마을회관 앞 광장에 짚 다발이 쌓이자 마을 사람들이 2개 조로 나뉘어 줄을 드리기 시작한다....
-
요즈음에는 뒷동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골목길이나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딱지를 치거나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무줄놀이도 비석치기도 땅뺏기놀이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놀이 공원에 가면 금방 수수께끼가 풀린다. PC방, 노래방, 비디오방, 게임방, 영화관 등에 가 봐도 해...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농악패를 ‘기맹기패’라고 한다. 그리고 “농악을 친다”라거나 “풍물을 친다”고 하지 않고 “기맹기 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든 살이 넘은 최대근[1927년생] 씨에게 물었더니, “나도 뭔 말인지는 모르겄어.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어.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모르제. 나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
구암리 마래마을에는 ‘샘거리’ 모임 외에도 ‘큰샘’이라고 하는 모임이 있다. 큰샘 모임은 많게는 스무 살까지 나이 차이가 나지만, 고창 관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갑자기 생기는 마을 행사에도 대부분 참석한다. 2010년 3월 15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지낸 당산제에도 회원들이 모두 참석하여 참례를 하고 뒷정리를 맡았다. 샘거리 모임의 구성원들 중에는 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