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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651
한자 鍾山齋
영어음역 Jongsanjae
영어의미역 Jongsanjae Shrine
이칭/별칭 월암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408[국밭길 27-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영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기와집
건립시기/일시 1832년[재건]연표보기
정면칸수 6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408[국밭길 27-2]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곽홍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개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곽홍지(郭弘址)[1600~1656]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자구(子久), 호는 대허정(大虛亭)이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고, 163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예조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현감, 부사(府使) 등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위치]

대가야읍에서 쌍림면 방향으로 난 국도 26호선을 따라가다 고령 나들목 방향으로 가다보면 고곡리가 나온다. 고곡리에서 우측으로 반룡사 방향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월막리가 나온다. 종산재월막리의 국밭마을 뒤편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종산재곽홍지를 기리기 위해 1806년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원래 월암사(月岩祠)라 하였으나 1869년 훼철된 것을 1932년에 다시 세워 종산재로 개칭하였다. 황매(黃梅) 박치복(朴致馥)이 기문을 지었다.

[형태]

종산재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좌측에 1칸과 우측의 2칸은 온돌방을 만들고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놓았다. 전면 길이 방향으로 길게 반 칸의 마루를 내었다.

[현황]

종산재가 위치한 월막리 국밭마을은 임진왜란 때 현풍곽씨가 이주하여 살았는데, 이주 당시 국화가 많이 피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월막리에는 현풍곽씨가 많이 살고 있다. 종산재에서 월막천 건너편에 위치한 월막마을에는 현풍인 예곡(禮谷) 곽율을 기리기 위한 예곡재[모례정]가 건립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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