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848 |
---|---|
한자 | 金鼎黃 |
영어음역 | Gim Jeonghwang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고조할아버지는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오른 김탁(金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무과로 출신하여 경원도호부사 겸 경원진병마첨절제사(慶源都護府使兼慶源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한 김세문(金世文)[1520~1569]이다. 정경부인(貞敬夫人)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송암(松庵) 김면(金沔)[1541~1593]의 공적으로 증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의금부사(贈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족보상에는 김정황(金鼎黃)의 할아버지가 김면과 김자(金滋)[1546~?] 두 사람으로 나타나는데, 이유는 김정황의 아버지 김의립(金毅立)[1571~?]이 김면 가계에 후사(後嗣)가 없어 양자로 들어갔지만, 양자로 간 김의립이 김자에게 적출 독자인 까닭에 김면의 후부인(後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상소를 올려 생가와 양가의 3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전교를 받은 까닭이다. 이 때문에 김면과 김자 두 집안의 가계를 잇게 되었다.
또한 김면은 아버지를 따라 고령에서 살았지만, 김자는 삼종숙(三從叔) 김수문(金秀文)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충청남도 노성(魯城)[현 논산]으로 이주하였다. 김자는 숙부인(淑夫人) 기계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김의립을 낳고, 숙부인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김충립(金忠立)·김태립(金泰立)·김예립(金禮立)·김제립(金悌立)을 두었다. 그래서 장자인 김의립을 김면의 양자로 입적하였지만, 김의립의 실제 거주지는 논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면과 그 윗대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일대에 위치하지만, 김의립 대부터는 논산에 있으며 김의립의 아들인 김정황의 행적 역시 『노성군읍지』에 상세히 나타나고 있다.
[활동사항]
김정황[1604~1687]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태어났다.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가 연기현감을 지냈다. 아버지 김의립이 별세하자 시묘를 하였으며, 후인들이 그 마을 이름을 시묘동(侍墓洞)[현 논산시 연산면 시묘리]이라 하였다. 이러한 효행으로 『노성현지(魯城縣誌)』에 등재되었다.
[묘소]
김정황의 묘는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