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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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鳳根 |
영어음역 | Yu Bong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사회운동가.
[개설]
8·15해방으로부터 미군정이 시작되는 10월 중순까지 2개월간은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주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수탈과 고문을 일삼았던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경찰 업무는 조직화된 지역 조직이 접수하였는데, 고령에서도 8월 15일 이튿날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치안대는 60여 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으며 99식 장총을 지니도록 하여 비상사태에 대처하도록 하였다. 고령 지역 초대 치안대장은 독립투사인 신철휴(申喆休)가 맡았다.
[활동사항]
유봉근(兪鳳根)은 150㎝ 정도에 지나지 않는 단구(短軀)였지만 몸집이 컸다. 그는 이 시기 민족정기를 드높이는 일이 최대 과제라 생각하여 대원들을 이끌고 고령보통학교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에 늘어선 30년생 벚나무들을 베어내는 한편, 계단 중간쯤에 있던 일본인 교장 야쓰나미[八波則吉] 불망비(不忘碑)를 철거하였다. 또 고령향교 서쪽에 일제가 세운 고령신사(高靈神社) 건물도 소각하여 철폐하였다. 그리고 신철휴에 이어 치안대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