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098 |
---|---|
한자 | -光州驛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10[대인동 324-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재훈 |
건립 시기/일시 | 1922년 7월 1일 - 옛 광주역 건립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3년 10월 1일 -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 영업 개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2년 12월 1일 - 송정~광주 간 철도 담양까지 연장 개통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9년 7월 25일 - 광주역 이전 |
소재지 | 옛 광주역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10[대인동 324-9] |
성격 | 옛터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차역의 옛터.
[개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최초의 철도가 놓인 것은 1913년 10월 1일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송정리역과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리[약 12㎞]였으며, 그 때문에 철도 연결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높았다. 그리하여 송정리역과 광주를 잇는 사철(私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 전남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철도 부설과 역사(驛舍) 설치 등이 진행되었다. 송정리~광주 간 철도는 1922년 7월 1일 개통하게 되는데, 개통 당월의 운영 실적은 승차 인원 1만 809명에 도착 화물 1240톤, 발송 화물 467톤이었다. 이 수치는 3년 뒤인 1925년 4월에는 승차 인원 4만 4789명으로 확대되어 광주 사람들의 주된 운송 수단으로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주된 이용객인 광주면의 인구가 2만 3734명인 것을 고려하면 실로 괄목할 만한 증가가 아닐 수 없다.
1930년 7월에는 남조선철도주식회사가 광주와 여수를 잇는 155.5㎞의 광여선(光麗線)을 개통해 운영함으로써 광주역은 전라남도권 교통의 중심이 되는 역이 되었다. 한편, 광주역과 광주면의 주요 지점을 잇는 도로는 지방비 5000엔을 지원받아 개설되었다.
[변천]
1922년 7월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에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36년 3월 1일 이후로 모든 노선이 국철(國鐵)로 전환되었으며, 1969년 7월 25일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으로 이전하였다.
[위치]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에 있었다. 현재 이 위치에 있는 대표적인 시설로는 광주광역시 동부소방서가 있다.
[의의와 평가]
열차를 이용한 광주군으로의 이동이 가능하게 되자, 인접한 나주군이나 담양군의 학생들이 광주 지역으로 통학하게 되었고, 광주역은 그런 학생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1928년에는 이경채(李景采) 가 주도한 항일 격문이 광주역 내에 걸렸고, 1929년 11월 3일에는 통학열차 내에서 발생한 한일 학생들 간의 충돌과 수습 과정에서 발생한 일본 경찰들의 차별적 태도를 기화로 광주학생운동이 발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