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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51
영어공식명칭 Jang Jaeche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57년 11월 13일연표보기 - 장재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2~23일 - 장재철 5.18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회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80년 5월 23일연표보기 - 장재철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5월 - 5.15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활동지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광주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의료반 활동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장재철[195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2일부터 시위대에서 활동하였다. 장재철은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사상자들을 후송하는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다. 장재철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부상자 발생 소식이 들려와 후송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중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장재철은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다며 서류 접수를 마치고 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5월 22일 장재철은 가족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수습대책위원회 의료반에서 활동하였다. 수습대책위원회 의료반의 역할 중 하나는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 지역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하고,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를 전라남도청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장재철은 의료반에서 후송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다.

5월 23일 밤 9시경 광주시 동구 지원동 벽돌 공장에 부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향하던 도중 매복해 있던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았다. 공장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장재철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가족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장재철을 걱정하며 찾아다녔으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사망자들을 전라남도청에 수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라남도청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들이 있었다. 그중 장재철이 있었으나 어머니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장재철전라남도청에 확실히 있다는 딸의 말을 듣고 다시 가서 장재철의 시신을 확인한 뒤 수습하여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하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08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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