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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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영어공식명칭 | Cloth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기원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관련 생활 및 풍습.
[개설]
의복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기후와 같은 자연조건과 지역사회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의복은 개인의 성별, 신분과 지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착용한다.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 성별과 일상생활, 노동, 의례 등의 상황에 따라 전통적인 복식을 착용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전통의상은 양복과 기성복으로 대체되어 갔다.
[일상복]
남성은 봄에는 면옷을 입었고 여름에는 삼베옷과 적삼을 입었다. 6월에는 옥당목(玉唐木)을 입었고, 겨울에는 겹저고리와 솜옷을 넣은 핫바지를 입었다. 여성의 경우,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색, 자주색, 노란색의 반회장 저고리에 통치마나 6폭 자락치마를 입었다. 겨울에는 내의 대신 바지를 속에 입었고, 몹시 추운 날에는 가슴에 하는 홀대를 몸 전체에 감기도 했다.
[작업복]
남성의 경우 일할 때 바지 저고리를 입었다. 여름에는 홑바지를 입었고, 겨울에는 핫바지를 입었다. 여성의 경우 속바지에 치마를 입었는데, 몸을 움직이기 쉽도록 허리를 동여 매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치마저고리 위에 스웨터나 다른 편리한 옷을 덧입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남성은 반바지를 짧게 만들어서 입고, 여성은 몸빼치마를 주로 경산시장 난전에서 구입해서 입었다.
[의례복]
혼례를 올릴 때에는 특별한 옷을 입었다. 신랑은 바지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다시 관복 도포를 입었다. 머리에는 사모관대를 하고 장화를 신는다. 신부는 치마저고리 위에 활옷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가죽신을 신었다. 이렇게 혼례 때 입는 의복은 가정에서 장만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게 마을 단위로 보관하고 있다가 혼례를 치르는 가정에 빌려주었다. 혼례를 치르기 전에 신부 쪽에서 이불과 예단을 준비하고, 신랑 쪽에서는 비녀, 가락지, 요강 대야 등을 준비해 예물로 주고받았다.
상을 당하면 상주와 가족은 상복을 입었다. 상주의 옷은 누런색 삼베옷에 굴건을 썼고, 외출 시에는 삿갓 모양의 방립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지팡이는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는 대나무,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는 버드나무로 된 것을 썼다. 상례 때 여성은 삼베로 만든 치마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허리에는 ‘터대’[요질]를 착용했다.
고인이 입는 수의는 살아있을 때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의는 본인이 구입하거나 며느리가 만들었으며, 환갑이 있는 해나 환갑이 가까웠을 때 윤달이 든 해에 장만하였다. 수의는 안감은 삼베로, 겉감은 명주로 만들었는데 환갑 때 수의를 입으면 좋다하여 한 번 입어두고 벗어서 보관하였다.
[오늘날의 의생활]
경산 지역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 일상생활과 의례 시에 전통적인 한복을 착용했지만, 1970년대 이후 근대화와 도시화에 따라 점차 양장이 보편화되어갔다. 현재는 농촌 지역에서도 전통 한복을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게 되었다. 오늘날 경산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 백화점, 브랜드 매장, 쇼핑몰 등에서 기성품으로 나와있는 현대식 의복을 구입해 입는다. 혼례의 경우 현대식 결혼식에 따라 양복과 드레스를 착용하게 되었고, 상례 시에도 양복으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