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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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陽精舍所藏古文書 |
영어의미역 | Old Documents Kept by Hwayangjeongsa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전병철 |
소장처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양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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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정유균|정익균|하영윤|조용극|정원영|김한종|정효여 |
용도 | 공문서|사문서 |
발급자 | 진주연계재회중|정유균|정익균|개경재회중|하영윤|조용극|정원영|김한종 |
수급자 | 정효여|백촌 하공|계재|극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양정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개설]
화양정사(華陽精舍)는 희재(希齋) 정종화(鄭鍾和)[1881~1938]가 반곡(盤谷) 화산(華山)의 남쪽에 지은 건물로, 정종화는 이곳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심신을 수양하였다. 정종화의 본관은 진양이며, 자는 사강(士剛)이다.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의 제자인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1534~1590]의 11세손이다.
[구성/내용]
화양정사 소장 고문서는 통문(通文) 3점, 제문(祭文) 7점, 경제 문서(經濟文書) 1점 등이다. 통문에는 1964년 진주연계재회중(晉州蓮桂齋會中)에서 각위좌전(各位座前)에게 『진양속지(晉陽續誌)』 증보 간행과 관련하여 보낸 통문 1점, 갑진년 정유균(鄭有均), 정익균(鄭益均) 등이 각위좌전에게 원조(元祖) 지후공(祗侯公)의 제단과 제전을 갖추고 제례를 행하려 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통문 1점, 정축년 개경재회중(開慶齋會中)에서 각위좌전에게 『진주통지(晉州通誌)』와 관련하여 연계재(蓮桂齋)에서 모인다는 내용을 알리는 통문 1점이 있다.
제문에는 무술년 하영윤(河永允)이 지은 제문 1점, 수급자는 정효여(鄭孝汝)이다. 정유년 함안(咸安)의 조용극(趙鏞極)이 지은 제문 1점, 수급자는 정효여이다. 신사년 정원영(鄭源永)이 지은 제문 1점, 수급자는 백촌(柏村) 하공(河公)이다. 정유년 상산(商山)의 김한종(金漢鍾)이 지은 제문 1점, 수급자는 정효여이다. 또한 수급자가 계재(溪齋)로 되어 있는 제문 2점[연도 미상]과 수급자가 극재(克齋)로 되어 있는 제문 1점[연도 미상]이 있다. 경제 문서로 1927년 12월 27일 발급자 정갑대(鄭甲大)가 작성한 차용증(借用證) 1점이 있다.
[의의와 평가]
화양정사 소장 고문서 가운데 통문은 조상에 대한 제례 및 『진양속지』, 『진주통지』 등 고을에 관한 서적 편찬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19세기 말 이후 근대 문물과 사상이 급속히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유교의 편린을 보여주는 문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