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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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魚孝瞻 |
영어공식명칭 | Eo Hyocheom |
이칭/별칭 | 만종(萬從),구천(龜川),문효(文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류진희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만종(萬從), 호는 구천(龜川). 시조는 고려명종 때 호장 동정(戶長同正)을 지낸 어화인(魚化仁)이다. 할아버지는 함안 입향조 월정(月亭)어연(魚淵)이다. 아버지는 조선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명신이자 학자인 면곡(綿谷)어변갑(魚變甲)이고, 어머니는 고려공민왕 때 보문각 직제학을 지낸 성사제(成思齊)의 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장인은 좌의정 박은(朴訔)이다.
[활동 사항]
어효첨(魚孝瞻)[1405~1475]은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기사관(記事官)으로 『태종실록(太宗實錄)』 편수에 참여하였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보완 작업에도 동참하였다. 1449년 예법(禮法), 공법(貢法), 사창법(社倉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고려사(高麗史)』를 개찬할 때 기(紀)·전(傳)·표(表)·지(志)의 체제로 할 것을 주장하여 채택되었다. 1453년(단종 1) 전라도를 안찰하여 폐정을 바로잡았다. 당시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권 강화를 꾀하여 의정부 의의제(議政府擬議制)를 육조 직계제(六曹直啓制)로 변경할 때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세조(世祖) 즉위 후 원종공신에 책록된 후 호조 참판·형조 참판·공조 참판 등을 거쳐 이조 판서로 승진하였다. 1468년(예종 즉위년)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1474년(성종 5) 판중추부사로서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서연(書筵)에서 『예기(禮記)』를 강하면서 『예기 일초(禮記日抄)』를 편찬하였다. 저서로 어변갑, 어효첨(魚孝瞻), 어세겸(魚世謙) 3대의 시문집인 『함종 세고(咸從世稿)』가 있다. 예학에 조예가 깊어 풍수설을 배격하고 척불(斥佛)을 주장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금당리함종 어씨 세장지에 있다. 원래 서울시 고덕 지구에 있었으나, 1982년 도시 개발로 지금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의정부 영의정 함종 부원군(議政府領議政咸從府院君)에 추증되었다. 경상남도 고성의 면곡 서원(綿谷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