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44
한자 趙崗濟
영어공식명칭 Jo Gangj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한절골1길 85-10[대산리 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3년 2월 14일연표보기 - 조강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52년 11월 26일연표보기 - 조강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3년 - 조강제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조강제 건국 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강제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한절골1길 85-10[대산리 681]
학교|수학지 대구 사범 학교 - 대구광역시 남구 중앙대로 219[대명 2동 1797-6]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강제(趙崗濟)[1923~1952]는 1923년 2월 14일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교사가 되기 위해 대구 사범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 조직인 문예부(文藝部)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 맞섰다. 당시 대구 사범 학교 문예부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비밀 결사 조직으로 매주 토요일에 모임을 하였다. 모임에서는 여러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비판하며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문예부는 1940년 11월 말부터 1941년 3월까지 약 9회의 모임을 하였는데, 조강제는 이 모임을 통하여 민족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조강제는 1941년 3월 대구 사범 학교를 자퇴하고 고향 함안으로 내려와 사설 강습소를 열어 이른바 농촌 계몽 운동을 전개하여 청소년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하지만 계몽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였는데, 1941년 7월 대구 사범 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며 대구 사범 학교 시절 활동이 빌미가 되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년여 동안 미결수로 있다가 1943년 11월 대전 지방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1948년 국군에 입대하였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였다가 1952년 전사하였다. 조강제의 아버지는 조용섭(趙鏞燮)이고, 어머니는 홍복순(洪福順)이다. 슬하에 딸 조선자(趙仙子)만 있어 형인 조창제(趙昌濟)의 넷째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추서, 1977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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