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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열두달 놀아보들 못하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30102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근대 1958년 - 김덕남 출생
근대 1979년 - 김덕담과 하종석이 혼인하다.
현대 1985년 - 야사 마을 뽕엿 생산 시작
현대 2001년 - 김덕남이 부녀회장을 맡다.
마을지 방앗간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뽕엿 만들고 산자 만들고]

야사 마을 입구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방앗간 건물이 있다. 그곳은 야사 마을 김덕남 부녀회장이 음력 12월부터 다음해 정월 보름까지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마을을 찾은 날 조사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앗간 안으로 들어서자, 부녀회장님이 할머니 몇 분과 함께 방안에서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 아직 설날이 남았는지라 당연히 마을의 대표산물인 뽕엿을 만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엿은 제쳐두고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

“뽕엿은 인자 끝나부렀고 지금은 산자(한과, 유과) 만들고. 어제부터는 떡방앗간 일 하느라 뽕엿은 주문이 와도 만들지 못해.”

뽕엿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마음은 무너졌지만, 대신 달콤한 산자 한 조각에 서운한 마음이 풀어졌다. 잠업이 특화된 야사 마을에서 뽕가루를 넣어서 만든 ‘뽕엿’은 1985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매우 인기 있는 마을특산품이다. 뽕엿은 김장이 끝나면 바로 시작하는데, 김장 끝나면 할 일이 없어서 농사 시작 전까지 엿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뽕엿을 만들던 부녀회원들이 고령화가 된 탓에 힘에 부쳐서 예전과 같이 활발하게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올해 뽕엿 생산이 일찍 마감이 돼버렸단다. 간간히 마을 사람들이 각자 만들어서 팔기도 하지만, 부녀회 주도로 생산되는 뽕엿은 이제 끝이 난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야사 마을의 뽕엿은 단연 인기품목이다. 거기에 산자 또한 개별적으로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고, 엿을 만들기 전 단계인 조청 또한 외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니 야사 마을은 이래저래 살만한 마을이라고 하겠다.

“엿을 조금 덜 다리면 조청이 되는데, 조청이 인기가 있어갖고 잘 가져가. 노인들이 한번 야사리 조청 맛을 봐불면 ‘진짜 옛날 조청이다.’ 그러고 많이들 사가. 그리고 뽕엿은 많이 잡솨도 독한 기가 없고. 사탕 같은 것은 안 독허요? 잡솨봐. 든든해. 예전에 고사릴 끊으러 갈 때 뽕엿 몇 개 넣고 가면 배가 든든해.”

[방앗간 일도 봐야 하고 누에도 쳐야 하고]

김덕남 부녀회장은 1958년 야사리 3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 같은 마을의 하종석 씨와 혼인하여 살다가 1984년에 야사1구인 이곳 야사 마을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남편 하종석 씨는 야사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여기에 부인은 부녀회장을 맡고 있으니, 조사자가 야사 마을에서는 가장 무게감 있는 부부라고 하니, 옆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여기 방앗간도 부녀회장네 것이여.” 하신다.

야사리 주민 대다수가 그랬듯이 김덕남 부녀회장님도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은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야사 마을 자체가 크게 농사도 없었고 특산품인 누에치기도 조금씩 밖에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농사는 물론이고, 뽕엿과 산자 그리고 방앗간 운영에, 누에치기 농사까지 다방면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야사에서는 내노라하는 부자일 수밖에 없겠다. 부녀회장님네가 진짜 야사 마을 부자라고 하자 부녀회장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한 말씀 하신다.

“아이고 시골부자는 못써. 일 부자라서 못써. 시골에서는 다 부자라고 하면은 일부자지 뭐라요? 일 안허먼 못살지. 내가 노력을 해야 그만큼 나오지 노력 안하면... 시골에서 부자로 산다면 얼마나 고생하고 살까, 그러죠. 나부터서 그래. 일 부자라 그러재”

농촌에서 부자로 살려면 그만큼 일을 해야 하니 결코 좋은 것은 아니란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짓고 방앗간일 하고, 정월이면 뽕엿에 산자도 만들고, 또 누에도 쳐야하니 일년 열 두달 놀 틈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면 그만큼 수익이 늘어나니 놀다가도 벌떡 일어나 일을 할 지경이란다.

[부녀회장 맡을 젊은 사람이 없어요]

이처럼 뽕엿부터 누에치기까지 김덕남 씨 개인의 일들로도 충분히 바쁘고 넘치는 일상일텐데, 부녀회장의 역할까지 다 하느라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뽕엿이나 산자 만들기 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 마을 당산제의 제물 준비나 한 여름 마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까지 모두 부녀회의 소관이니 말이다. 그래서 매년 부녀회장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만, 벌써 십녀 넘게 야사리 부녀회장은 김덕남 씨로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부녀회장을 맡고 보니 이제는 다들 이름이나 택호보다는 부녀회장으로 부르고 있다.

“내가 부녀회장을 솔찬히 많이 했어. 몇 년 된지를 모르겄네, 십년이 넘었응께. 아이고 그만해도 되겄는데, 잘하도 못한디 노인들이 많애갖고…”

대신할 젊은 부인들이 없어서 그 긴 세월 부녀회장이라는 막중한 일을 해오고 있는 김덕남 씨의 어깨가 순간 무거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야사 마을이 워낙 농사 외에도 여러 일이 있어 활발한 곳이기에 마음이 놓인다는 부녀회장님. 마지막으로 야사 마을 자랑을 크게 한마디로 해주셨다.

“다른 마을에서 우리 야사를 부러워하는 것이 많아요. 우리 야사로 이사 온다고도 하고.”

[정보제공]

  • •  김덕남(여, 1957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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