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C03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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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미옥 |
김양기 출생 | 1923년 - 마당밟이 탈을 만든 주민 김양기가 화순군 도암면 도장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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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기 구순임 부부 결혼 | 1946년 - 마당밟이 탈을 만든 주민 김양기와 구순임 부부가 결혼하였다. |
마을지 | 도장 마을회관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289번지 |
[여든 다섯의 각시를 기다리는 아흔 살의 서방]
김양기 씨는 올해로 딱 아흔이다. 도장 마을에 태를 묻고서 살아온 아흔 해 동안 할아버지의 반쪽인 구순임 씨는 장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추운 바람을 이고 할머니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결국 다음 버스를 기약하며 전동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김양기 씨를 만난 날,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그날 도장 마을은 막바지 추수로 텅 빈 듯했다. 할아버지는 올해도 여든 다섯이나 되신 짝궁 할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대부분 기계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아흔이 넘은 노인이 농사를 짓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단다.
김양기 씨는 1923년에 이곳 화순군 도암면 도장 마을에서 오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리고 이 노부부는 각각 스물두 살과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혼인을 하였다. 부인은 화순 춘양면 부곡리가 친정으로 일제 강점기의 처녀 공출을 피해 서둘러서 혼인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큰집에서 일 년 정도 함께 살다가 이듬해에 분가를 하였는데, 이후로도 가난한 살림에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닌 뒤 어렵게 지금의 집을 장만해서 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워낙 아버지가 논과 밭을 적게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결혼해서도 형님네 농사를 도와주면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가난한 살림이었다. 그래서 비록 남의 집 머슴은 살지 않았지만 품앗이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손재주만은 마을에서 내가 최고여]
할아버지는 워낙에 가난한 농군 집안에서 태어났던 지라 열네 살부터 지게 지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학교 공부는커녕 서당공부도 하지 못했다.
“글 배운 것이 있간디? 포도시[겨우] 국문이나 어쩌다 뛰어간 놈이나 알제.”(김양기)
한글이나 겨우 배웠다는 할아버지는 그래도 마을에서 손재주만은 최고로 알아주는 분이다. 할아버지의 뛰어난 손재주는 생활에 꼭 필요한 짚신은 물론이고,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덕석이니, 망태니 하는 것들은 우습게 만들었고, 집의 지붕을 새로 일 때 반드시 필요하였다. 이런 할아버지의 손재주가 가장 빛을 발하는 때가 바로 정월에 했던 마당밟이에서였다. 30명이 훌쩍 넘은 사람들이 고깔을 쓰고 징이며 꽹과리며 북이며 장구를 치고 집집을 도는데, 이때 얼굴에 기괴한 모양의 탈을 쓰고 노는 잡색들의 놀음이 마당밟이의 재미를 한층 고조시켜준다. 김양기 씨는 바로 마당밟이에서 쓰는 탈, 고깔, 짚방울 등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물론 지금은 너무 늙고 힘이 들어서 만들지는 못하고 사서 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손재주는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재주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들을 쓰고 탈놀음도 하고 꽹과리도 치면서 정월이면 흥에 겨워 더덩실 춤을 추고 놀았던 지난 세월이었다. 지금은 마당밟이도 힘에 부쳐서 안한지 몇 해가 지난지도 모르겠다. 아흔 살이나 살아버린 늙은 몸도 그렇지만, 10여년 전에 우연히 못쓰게 된 다리가 더욱 아쉽다. 어떻게 하다가 한쪽 다리가 그리 불편하게 되었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젊어서 너무 많이 놀아부러서 그런가 다리 못쓴지 오래 되았어. 즐거움이 많애갖고 뛰어놀고 하다 보니께 그런가…”
즐거움이 너무 많아서 한쪽 다리가 상하는 줄도 몰랐을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손은 불편하지 않으니 앉아서 하는 일이면 다 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스물두 살에 혼인해서 3남 3녀를 낳고 살았다는 할아버지는, 첫날밤부터 예순하고도 여덟 해를 함께 살아온 할머니가 혹여 장에 가서 점심끼니를 놓치지나 않았을까 노심초사하신다. “나도 치아가 불편하지만 할머니는 전부 틀니고, 틀니가 불편해서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 걱정인디....”라며 한평생을 금슬 좋게 살아온 김양기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 지나는 마을 회관 앞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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