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응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665
한자 蘇凝天
영어공식명칭 So Eungcheon
이칭/별칭 일혼(一渾),춘암(春菴),문거당(問渠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 소응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소응천 사망
출생지 금마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해남 - 전라남도 해남군
거주|이주지 무주 - 전라북도 무주군
거주|이주지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진주(晉州)

[정의]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인

[가계]

소응천(蘇凝天)[1704~176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일혼(一渾), 호는 춘암(春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이인(蘇爾寅)이고, 할아버지는 소경의(蘇景誼)이다. 아버지는 소태겸(蘇泰謙)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郞) 윤우한(尹遇漢)의 딸 칠원윤씨(漆原尹氏)이다. 부인은 고만구(高萬九)의 딸 장택고씨(長澤高氏)이다.

[활동 사항]

소응천은 1704년(숙종 3)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명재(明齋) 윤증(尹拯)에게서 배웠다. 부모가 사망한 뒤에는 해남에 있는 누나의 집에서 살았다. 일찍부터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경학(經學)도 깊이 공부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두류산과 덕유산(德裕山) 등 깊은 산속에 들어가 독서에 전념하였다.

소응천은 여러 지역의 문인들과 사귀고 국내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면서 여러 편의 시문을 남겼다. 한때 소응천을 미워한 토호(土豪) 때문에 진주의 변서(變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나 여생의 대부분을 덕유산에서 은둔하였다. 재상 조영국(趙榮國)이 소응천의 명성을 듣고 서신을 보내기도 하였으며, 어사 한광조(韓光肇)가 찾아와 천거할 뜻을 비쳤으나 거절하였다. 소응천은 1760년(영조 36) 전주로 거처를 옮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소응천의 문집으로는 필사본으로 된 7권 6책의 『춘암유고(春庵遺稿)』가 전한다. 홍양호(洪良浩)의 『이계집(耳溪集)』에 소응천의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다.

[묘소]

전라북도 전주의 북우산(北紆山) 선영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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