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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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珍島郡立民俗藝術團 |
영어의미역 | Jindo Municipal Folk Art Group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선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진도 지역 민속예술 보존 및 계승 단체.
[설립목적]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1993년 9월 1일 ‘군민 정서 함양과 지방 민속 예술 창달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목적으로 창단되었다. 특히 국가 지정 국가무형문화재뿐만 아니라 도 지정 무형문화재, 그리고 다양한 비지정 무형문화재들을 효과적으로 엮어서 공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설립경위]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1961년 진도문화원이 설립되면서 창단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후 1965년 제4대 원장에 조담환(曺淡煥)이 취임하면서 민속 음악 활동이 활발해졌다. 사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설립의 단초가 된 것은 1983년 진도문화원이 창단되어 1985년부터 활동한 진도민속예술단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존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연·공연이 이루어졌다. 민속음악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1967년부터 시작된 소치문화제, 1974년부터 시작된 옥주문화제도 큰 역할을 하였다.
1986년 2월 28일에는 ‘진도군립민속예술단설치조례’가 제정되었으나 곧바로 조직구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1992년 4월 6일에 이윤선이 주도한 진도사물놀이패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93년 6월 3일에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이 조직되어 30여 명의 운영위원과 단원들을 모집하고, 10월 18일 정식적으로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을 창단하였다.
[변천]
진도군립예술단의 첫 공연은 1994년 2월 2일 서울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이루어진 진도 민속공연이었다. 이때 국가무형문화재 시연을 중심으로 공연을 진행했는데 호응이 무척 좋았다. 이후 약간의 부진을 보이다가 1997년 3월 26일 진도향토문화회관이 준공되면서 같은 해 4월 5일부터 ‘토요공연’이 첫 막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진도군립예술단은 2005년까지 9년 연속 매주 주말 상설공연을 해오고 있다.
[주요사업과 업무]
주요 사업으로는 토요민속여행 상설공연, 국악예술인 및 예술단체 초청공연, 진도영등축제 공연, 각종 행사의 축하공연, 주민 위안공연 등이 있다.
[활동사항]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매주 공연되는 토요민속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공연을 열고,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때로는 외부 공연을 열기도 하는데, 전국 순회공연은 물론 1년에 약 1~2회 정도 해외공연에 나가기도 한다. 해외공연의 경우 웰컴투 코리아와 공동으로 네덜란드, 유고, 슬로바키아, 일본 등에서 공연을 열었다. 1997년 진도향토문화회관이 준공되면서 같은 해부터 ‘토요민속여행’이라는 공연이 상설화되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공연은 대략 3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물론 1기 이전에도 산발적으로 공연활동이 이루어졌지만 공식적인 진도군립예술단의 조례 개정 이전의 시기이므로 이를 제외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1951년 이후부터의 강강술래 경연대회라든가, 1965년 2월 15일에 강강술래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부터 산발적으로 시연 중심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묶음공연의 경우, 1969년 진도문화원에서 주관한 소치문화제에서 1974년 이후의 옥주문화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사를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4월부터 시작된 진도문화원 주관의 영등축제도 빼놓을 수 없는 묶음공연 사례이다. 시연 형태의 공연은 강강술래 이후 1971년의 진도들노래의 발굴로 시작된 개별 보존회의 활동들이 주류를 이룬다. 각 보존회들은 진도아리랑 보존회와 조도닻배노래 보존회, 소포농악 등을 제외하면 거의 이 시기에 국가무형문화재나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는다.
따라서 1기는 이러한 전통 속에서 개정된 1986년의 진도군립민속예술단설치조례기부터 1997년 ‘토요공연’이 막을 올리기 전까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례는 개정했지만 진도군립민속예술단에게는 특별한 공연활동이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주로 민속놀이 보존회들이 독자적으로 공연활동을 한 시기이다. 구성원들도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시연 중심의 공연에 임했던 시기이다. 개별적인 공연으로는 주로 진도씻김굿 보존회의 진도 씻김굿 시연 활동, 남도들노래 보존회의 남도들노래 시연 활동, 강강술래 보존회의 강강술래 시연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1994년의 리틀엔젤스 공연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중심의 묶음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전에 행해졌던 묶음공연의 전통에 힘입었다고 말할 수 있다.
2기는 1997년 4월 5일부터 시작된 ‘토요공연’ 시행부터 2001년까지를 그 시기로 한다. 1997년에는 일부 조례개정을 통해 부단장제 신설 및 17명의 비상임단원을 선임하고, 상설공연을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공식적으로 무대공연이 이루어졌다. 앞 시기에는 개별 공연이든 묶음공연이든 마당 중심의 연행 형태를 보여주었지만 이 시기부터는 서양식 무대에서 민속연희를 선보이는 공연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속연행이 아닌 공식적인 의미의 공연이 시작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공연기획이나 연출이 가미된 형태는 아니었다. 대체로 이 시기에는 4종의 국가무형문화재와 2종의 도 지정 무형문화재를 순서대로 공연하였다. 특이한 것은 다른 연희 종목들은 순서에 따라 공연되었지만 당시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던 남도민요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3기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이다. 2002년부터는 연출단장직이 신설되고 공연의 형태가 테마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2기까지의 총괄 업무를 진도군 행정 당국에서 주도했으나 이때부터는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이 직접 총괄 업무를 주관하게 된다. 또한 지정 문화재 중심의 순환 공연에서 탈피해, 진도의 향토민요와 연희종목들을 포함한 기획 주제 중심의 공연을 꾸렸다는 특징이 있다. 단원 구성은 30여 명으로 늘어나지만, 오히려 진도 내의 향토 민요꾼들을 공연에 참여시키는 등 안팎으로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공연된 테마들은 15개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원무(圓舞), 그 원형(原型)의 소리전」, 「재생(再生)의 꿈, 다시래기전」, 「내 삶의 마지막 여행지 진도」, 「진도, 그 오래된 미래」,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가는 길」, 「남도의 귄과 징한 신명전」, 「왕생의 문(門) 상생의 무(巫)」, 「옥주골의 북소리」, 「진도쌀, 그 생태와 신명전」, 「다도해 갱번의 꿈」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3기를 상반기 2년과 하반기 2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상반기가 주로 테마 중심의 공연을 도입하고 실험하는 단계였다면, 하반기는 테마 중심의 공연에서 스토리텔링과 노스탤지어 지향성을 지향한 공연을 구성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직]
2005년 현재 운영위원회의 위원장은 부군수가, 부위원장은 국악협회가 맡고 있다. 이외의 운영위원으로는 군의회 의원 두 명, 진도문화원장, 예술단체장 두 명(예총과 민예총), 연출단장, 예능보유자 두 명(강강술래보존회, 만가보존회), 예술단원, 관계 공무원 두 명(문화관광과장, 향토문화회관 관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실무 책임자는 초대 및 2대 연출단장인 이윤선을 거쳐 김오현이 3대 연출단장을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이 창단되고 발전된 과정을 살펴보면, 역사와는 특별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16세기 악공의 전통, 혹은 그 이전의 전통과 맥을 잇고 있다고 보여진다. 즉 옛 시대의 전통들이 이후 여러 단계와 변화를 거치고, 성숙되면서 현재의 진도군립민속예술단으로 정착되는 데 뿌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