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004
한자 - 韓民族- 代表的 民謠 密陽-
영어공식명칭 Miryang Arirang, a Representative Folk Song of the Korean People, that Anyone Can Easily Sin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황병익

[정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전승되는 대표적인 민요.

[개설]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전승되는 「밀양아리랑」은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세마치장단에 맞추어 3음 음계의 계면조로 불리며 가사의 내용은 주로 밀양부사(密陽府使) 윤씨[또는 이씨]의 딸 아랑(阿娘)이 젊은 관노(官奴)에게 죽임을 당한 한을 담고 있다. 흥겹지만 슬픔이 배어 있는 「밀양아리랑」의 정서적 힘은 현대까지도 발휘되고 있다.

[「밀양아리랑」의 형식과 내용]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감정과 분노를 담은 구전민요(口傳民謠)로 널리 퍼지게 된 「아리랑」은 「도라지」, 「양산도(陽山道)」, 「태평가」 등과 함께 널리 알려진 민요이다. 경기민요의 「아리랑」을 「본조아리랑」[「본아리랑」]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민요가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어서 명칭상으로 구분을 하기 위함이다. 「긴아리랑」, 「별조아리랑」,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원산아리랑」, 「서울아리랑」, 「정읍아리랑」, 「하동아리랑」, 「영일아리랑」, 「서산아리랑」 등 「아리랑」은 지역에 따라 가사와 곡조에 다소간 차이를 보이며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이 밖에도 보은·안성·청양·충주·무주·담양·남해·고흥·안주·통천·장수·부안·군산·평북·원주·천안·이천·양덕·부여·공주·양양·예산, 그야말로 전국 모든 지역에서 불리는 「아리랑」의 다양한 가사가 채집된 바 있다.

이 가운데 「밀양아리랑」은 밀양부사의 딸 아랑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당시 부녀자들이 아랑의 정절을 기리어 “아랑아랑~” 하고 찬양하던 노래에서 연유되었다는 「밀양아리랑」의 가락은 5음 음계[C. E. F. G. E♭]로 구성되었고, 종지음은 E♭이다.

채집 지역이나 가창자에 따라 가사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데, 「밀양아리랑」의 대표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哀話)가 전해 있네// 저 건너 대숲은 의의한데/ 아랑의 설은 넋이 애달프다// 채색으로 단청된 아랑각(阿娘閣)은/ 아랑의 유혼(遺魂)이 깃들여 있네//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 주오.”

성경린과 장사훈이 1949년에 펴낸 『조선의 민요』에 수록된 「밀양아리랑」은 두 종류인데, 각각 다음과 같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가마 타고 시집가긴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당나귀 타고 장가 가긴 다 틀렸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 든 님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긋// 울 넘어 총각의 각피리 소리/ 물 긷는 처녀의 한숨 소리// 잊으리라 잊으리라 굳은 맹세 하였건만/ 창외삼경(窓外三更) 세우 시(細雨 時)엔 또 못 잊어 우네// 세상에 핀 꽃은 울긋불긋/ 내 마음에 핀 꽃은 울렁울렁//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아리 얼씨구 아라리가 났네.”

김점도가 1992년 편집한 『우리민요대백과』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있네// 저 건너 대숲은 의의(依依)한데/ 아랑의 설은 넋이 애달프다// 채색으로 단청된 아랑각은/ 아랑의 유혼이 깃들여 있네// 남천강(南川江)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碧空)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송림 속에 우는 새 처량도 하다/ 아랑의 원혼을 네 설워 우느냐// 촉석루(矗石樓) 아래의 남강 물은/ 논개(論介)의 충혼이 어리었네// 영남루 비친 달빛 교교한데/ 남천강 말없이 흘러만 간다// 아랑의 굳은 절개 죽음으로 씻었고/ 고결한 높은 지조 천추에 빛난다// 밀양의 아랑각은 아랑 넋을 위로코/ 진주의 의암(義岩)은 논개 충절 빛내네// 팔각정(八角亭)인 영남루 웅장한 모습/ 반공(半空)에 우뚝 서 기관(奇觀)을 자랑// 송운대사(松雲大師) 비각을 구경하고/ 경치 좋은 표충사(表忠寺) 들러나 갈까// 영남루 남천강 아랑각은/ 영남의 명승인 밀양의 자랑// 달밤에 홀로 일어 영남루에 오르니/ 어디서 부는 통소 내 마음을 설레네// 아랑의 착한 마음씨 구천이 살피사/ 피맺힌 원한이 풀리었네// 파란만장 임진왜란 풍진(風塵)을 헤치던/ 송운대사 유적을 보고나 갈까// 풍광이 명미(明媚)한 영남루에/ 피로한 심신을 풀어 볼까// 유유히 흐르는 남천강 물에/ 일엽선(一葉船) 띄우고 즐겨 볼까// 무심한 저 달에 구름이 잠겨/ 우울한 심사를 돋우어 주네// 가냘픈 아랑의 고운 자태/ 죽어도 방혼(芳魂)이 남아 있네// 정절을 위하여 던진 목숨/ 후세에 그 이름 빛나도다// 남천강 기슭에 조는 백로야/ 네 무슨 소회 있어 저대토록 섰느냐// 월색이 조요한 남천강에/ 아랑 넋 달래며 선유(船遊)나 할까// 대숲이 우거진 영남루에/ 백화가 난만히 피어 있네// 청천에 울고 가는 저 기럭아/ 아랑 소식 전하려 네 급히 가나//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꽃들/ 외로운 심경을 산란케 하네// 아랑의 억울함을 호소코자/ 사또 앞에 나타나면 놀라서 죽네// 남산골 샌님이 자원하여/ 아랑의 원한을 풀어 주었네// 아랑의 정절을 추모하여/ 아랑각에 춘추(春秋)로 제향을 받드네// 황성낙일(荒城落日) 찬바람에 쓸쓸한 심정/ 남천강 물같이 흘러나 볼까// 백화(百花)가 우거진 남천강 언덕에/ 벌나비 쌍쌍이 날아를 난다//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문화방송에서 1994년에 펴낸 『한국민요대전』에 나오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에 영남루를 찾아 오니/ 아랑에 애화가 전해 오네// 칠보장 채색에 아랑각은/ 아랑에 슬픔이 잠겨 있네// 남천강 굽이 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십오야 밝은 달은 아랑각을 비춘다// 전라도 목포에는 유달산이 명산이요/ 강원도 경포대는 폭포수가 명수지//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밀양에 영남루는 와 이리 좋노// [후렴] 아리둥다꿍 쓰리둥다꿍 아라리가 나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렇듯 채록된 가사들을 보면, 『조선의 민요』에 채록된 가사는 신민요이자 통속민요로서 전국적으로 불리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그 외의 채록에는 밀양의 지역성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특히 밀양부사의 딸 아랑의 전설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아랑 전설은 관노 허씨가 아랑에게 반하여 아랑의 유모와 짜고 3월 보름달 아래에서 아랑을 불러내어 희롱하려다가, 아랑이 정절을 지키며 저항하자 단도로 아랑을 찔러 죽인 이야기이다. 이후 죽임을 당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아랑의 원혼이 신임 밀양부사 앞에 나타나니 부사들은 혼절하여 죽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남산골 젊은 선비가 신임 부사를 자처하여 밀양으로 내려와 아랑의 한을 풀어 주고, 영남루 아래에 아랑각을 세워 준다는 슬픈 전설이다.

현재 전하는 「밀양아리랑」은 밀양의 부녀자들이 아랑의 정절을 사모하여 “아랑 아랑~” 하며 아랑의 전설을 찬미하던 「아랑가」가 세월이 지나 변화한 노래라 할 수 있다. 아랑의 깊은 한을 담았지만, 「밀양아리랑」은 슬픔에 젖어 있지 않다. “슬프지만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다.”라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랑각에는 아랑의 슬픔이 서려 있지만 밝은 달이 아랑각을 비추고, 그 한은 이미 다 풀리었으니, 슬픔을 뒤로하고 지금은 천하제일 영남루의 경치에 취하여 흥겹게 즐기자 하였으니,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민중 의식의 건강함과 역동성, 웃음으로 눈물을 닦으려는 민중의 활달한 자세가 돋보이는 민요이다.

[밀양 아리랑이 가진 정서와 그 가치]

「밀양아리랑」은 가락은 흥겹지만 슬픔이 배어 있으니 감정과 정서가 오묘하다. 애이불비라는 말은 『논어(論語)』의 “애이불상(哀而不傷)”에 근원을 둔다. 공자는 『시경(詩經)』의 첫 번째 시 「관저(關雎)」를 읽고, “즐거우나 음란하지 않고, 애처로우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哀而不傷].”라고 하였다. 「관저」는 짝 지은 새와 짝을 지은 남녀의 모습을 그렸다. 짝이 있어 서로 응하고 화합하지만,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을 가진다는 중용의 경지를 강조하였다. 즐거운 감정일 때도 지나치지 않고, 슬픔 감정일 때에도 그 감정에 마냥 함몰하지 말라는 내용이니, 어떠한 순간이라도 감정을 절제하라는 이상론을 담았다. 세상살이에는 서러운 일도, 억울한 일도 많다. 정절과 지조를 지키다가 죽음에 이른 아랑의 분노와 억울함의 정도는 어떠하였겠는가? 하지만 아랑도 다행히 은인을 만나 한을 풀었으니 이제 분노도, 억울함과 한도 다 잊으라는 의미이다. 다분히 슬픔과 아픔을 애써 달래려는 건강한 자세를 담고 있다.

「밀양아리랑」의 “와 이리 좋노”는 사실상 “왜 이렇게 슬프냐”라는 의미인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가락은 이미 애조와 슬픔을 뛰어넘으려고 몸부림친다. 수난도, 외침도, 내란도 많았던 우리 민족이 그 한을 다 간직하고 쌓아 두고만 살았다면 어찌 하루인들 버티며 살 수 있었겠는가. 「밀양아리랑」이 위대하여지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아리랑」으로 하나 되어 울고 웃으며 어려움을 버텨 왔다고 전한다. 「아리랑」의 저력은 현대에도 통한다. 부르기 쉽고 여럿이 부를 수 있고 후렴을 반복하는 사이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주고받으면서 부를 수 있어 실타래처럼 무궁무진 펼쳐져 나오는 민중의 노래로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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