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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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昭 |
영어공식명칭 | Park Soh |
이칭/별칭 | 회옹(晦翁),인당(忍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련 |
출생 시기/일시 | 1347년 - 박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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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26년 - 박소 사망 |
출생지 | 사포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리 |
묘소|단소 | 박소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운정산 |
사당|배향지 | 박소 배향지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
사당|배향지 | 덕남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초동로 398-13[신호리 220] |
성격 | 학자|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밀성(密城)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가계]
박소(朴昭)[1347~1426]의 본관은 밀성(密城)[밀양]이며, 자는 회옹(晦翁), 호는 인당(忍堂)이다. 1347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밀양박씨의 대종(大宗)인 태사공파의 인물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간(朴幹)이고, 할아버지는 박영균(朴永均)이며, 아버지는 송은(松隱) 박익(朴翊)이다. 어머니는 찬성 배현보(裵賢輔)의 딸과 류인기(柳仁杞)의 딸 고흥류씨이다. 박소의 쌍둥이 형은 우당(憂堂) 박융(朴融)이고, 부인은 평양조씨 조홍(趙洪)의 딸과 공인기(孔麟起)의 딸 창원공씨이며, 아들은 박맹번(朴孟蕃), 박중번(朴仲蕃), 박계번(朴季蕃)이다. 사위는 분성군(盆城君) 배원룡(裵元龍)의 증손 배정비(裵廷斐)이다.
[활동 사항]
박소는 아버지 송은 박익이 출사하자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포은 정몽주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공양왕 때 국운이 기우는 것을 알고 아버지가 낙향하자 함께 낙향한 후, 초동면 새터로 이거하여, 춘정 변계량 형제와 더불어 구령동약(龜齡洞約)을 만들었다.
조선 개국 후에 태조가 아버지 박익을 불렀으나 출사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나는 왕씨의 신하로 죽지만 너희들은 이씨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이미 남의 신하가 되었으면,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박소는 3년상을 치른 다음, 1408년(태종 8)에 형 우당과 함께 61세의 나이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박소는 늦은 나이에 안음현감에 부임하였는데, 생활은 검소하게 하면서 백성을 덕으로 보살피고, 행정은 공정하면서도 너그러워 고을 백성들이 청백비를 세워 박소의 치적을 기렸다.
일찍이 「계사(戒辭)」를 지어 경계하기를 “지나치게 많은 말과 생각은 마음에 지극히 해롭다. 매사 일삼지 않고 안정하여 고요히 정좌하면 내면에 경(敬)이 생기게 된다. 사람을 만날 때는 언어를 진실되게 하고 겉과 속의 의절(儀節)을 반듯하게 하여야 도에 가까워진다.”라고 하였는데, 조선 전기 유학 사상의 지형을 알 수 있게 한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형제,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신재(信齋) 한상경(韓尙敬),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 당옹(戇翁) 이서(李舒)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박소는 1426년에 사망하였다.
[묘소]
박소의 묘소는 밀양시 무안면 운정산에 있었으나 지금은 소실되어 위치를 알 수 없고,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에 단(壇)을 세워 제향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새터에 있는 덕남서원(德南書院)에서 봄과 가을에 향사하고 있다. 주향은 송은 박익이고, 동배는 우당 박융, 서배가 인당 박소이다. 입향봉안문은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