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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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淹慶 |
영어공식명칭 | Ahn Eomgyeong |
이칭/별칭 | 둔옹(遁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라 |
출생 시기/일시 | 1392년 - 안엄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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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사당|배향지 | 둔옹정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광주 |
대표 관직|경력 | 호조참판|공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문신.
[가계]
안엄경(安淹慶)[1392~?]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호는 둔옹(遁翁)이다. 광주안씨 밀양 삽포파(鈒浦派) 안창의 4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안정(安鼎)이고, 아버지는 안처선(安處善)이다. 동생은 정암 안완경(安完慶)이며, 아들은 안억수(安憶壽)이다. 사위는 예조정랑 이영서(李永瑞), 좌의정 홍달손(洪達孫)이다.
[활동 사항]
안엄경은 1392년(태조 1)에 태어났다.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충주목사(忠州牧使)·호조참판(戶曺參判)·공조판서(工曺判書)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사위 홍달손이 계유정난에 참가하자 안엄경은 홍달손을 몰래 불러 꾸짖고 홍달손과 인연을 끊고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호를 둔옹이라 하고 화를 면하였다. 안엄경의 동생 안완경은 충청도관찰사로 쫓겨났다가 다시 양산에 유배되어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안엄경은 아들 안억수와 밀양 삽포(鈒浦)[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로 옮겨 살면서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만 1455년(세조 1) 『세조실록』에 계유정난 공신 3등에 책봉된 사료가 있는데, 안엄경의 행적과 관련하여 합당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과 저술]
안엄경은 일찍이 전과(全過)·원욱(元郁)·류사식(柳士植) 등 19제현과 ‘총마계(驄馬契)’를 조직하여 서문을 짓고 국사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후에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총마계첩(總馬契帖)에 시 3수를 실었다. 김종직의 총마시(總馬詩)는 다음과 같다. “남대(南坮)[어사대] 깊은 곳에 세월이 오랜데 서물 넘는 사람들이 안행(雁行) 같구나 곧게 뻗어 남은 응당 고백(古栢)에 참여할 듯 간사함 물리침은 마침내 신양(神羊)[관원이 쓰던 모자]에 부끄러움이 없네. 의분(義分)에 일그러짐이 없음은 그전부터 알았지만 시정(詩情)에 격앙됨을 몇 번 봉착하였던가 날마다 함께 웃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인데 뒷날의 성쇠시(盛衰時)에도 서로 잊지 말게나 둔옹.”
[상훈과 추모]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 안엄경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둔옹정(遁翁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