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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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楊州 奉先寺 七星圖 |
이칭/별칭 | 봉선사 칠성탱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부평리 25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주영 |
제작 시기/일시 | 1903년 -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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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26년 -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3월 8일 -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4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장처 | 봉선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부평리 255] |
원소재지 | 원흥사 - 서울 종로구 창신동 |
성격 | 탱화 |
작가 | 예예상규|범선원하 |
서체/기법 | 우림법 |
소유자 | 봉선사 |
관리자 | 봉선사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봉선사에 있는 개항기 탱화.
[개설]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南楊州 奉先寺 七星圖)」는 1903년 조선 후기의 화승(畵僧)인 예예상규(禮藝尙奎)가 편수(邊手)를 맡고, 범선원하(梵船元荷)가 출초(出草)를 맡아 제작된 탱화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던 원흥사에서 보관하다가 1926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봉선사 북두각에 봉안되었다. 원흥사는 현재 폐사되었다.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는 2011년 3월 8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4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봉선사 칠성탱」이라고도 한다.
[형태 및 구성]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의 크기는 가로 210㎝, 세로 195.5㎝이다. 가운데에 숭배의 중심이 되는 본존(本尊)인 치성광여래가 있고, 좌우에는 일광보살, 월광보살과 칠원성군, 가운데에는 칠여래가 있고, 상단에는 사대육성 등이 배치되었다. 치성광여래는 연화좌[연꽃무늬 자리]에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고 허리를 펴고 바른 자세로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다. 원형의 두광(頭光)[정수리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지녔고 왼손에는 보주(寶珠)를 들었으며, 정수리에 솟아 오른 혹과 같은 육계(肉髻)와 육계 위에 표현된 구슬인 정상계주(頂上髻珠)에서는 하얀 빛을 표현하였다.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연꽃을 들었고 칠원성군은 관을 쓰고 본존을 향하여 있으며 칠여래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특징]
칠성도는 칠성을 의인화하여 묘사한 그림이다. 칠성을 숭앙하는 칠성신앙은 조선 시대 서민이나 부녀자들에 의하여 주로 이어졌고, 여러 성신(星辰)이 칠성으로 일반화되면서 성신신앙(星辰信仰)의 핵심이 되었다. 조선 후기 칠성신앙의 성행으로 칠성 불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는 칠성도의 여러 유형 중 치성광삼존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을 도설한 형식에 삼대육성이 도설되는 형식이다. 본존과 보살들의 몸은 육색(肉色)[살색]을 칠하였고, 본존만 의습(衣褶)[옷의 주름]에 덩굴풀 무늬를 띤 당초문대를 둘렀으며, 나머지는 옷 주름 전체에 금박을 아교에 개어 만든 안료인 금니(金泥)로 문양을 넣어 은은한 느낌이 든다. 먹을 묻힌 붓과 물을 묻힌 붓을 번갈아 사용하여 입체감과 질감을 더하는 우림법이 활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의 존상들은 대체로 녹색 두광과 붉은색 의복을 입어 배색의 변화가 적고, 채색은 짙고 탁한 편이다. 인물 표현은 안면 표현 방식이 모두 동일하고 필선이 도식적이어서, 양식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보기도 한다. 편수를 맡은 예예상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울과 경기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한 불화승으로,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는 조선 후기 이후부터 대한제국까지의 탱화 양식을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