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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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에서 일제에 항거하여 전개된 일제 저항 운동.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전국 도처에서 항일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하자 일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식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런 가운데 1919년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한국민임을 대외에 천명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3·1 운동이었다. 이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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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기미년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후학들에게 전승하기 위한 기념식. 묵재(黙齋) 홍일섭(洪日燮)[1878~1935]과 경호(鏡湖) 장재학(張在學)[1862~1919]은 만세운동 당시 민족혼을 되살리는 데 노력한 인물들이다. 홍일섭은 시종원주사로 일하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양위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조치원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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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예(禮)를 기르고[養] 배우는 곳이라 하여 예양리(禮養里)가 되었다. 예부터 충신(忠臣)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부자(五父子)가 충신인 박천붕(朴天鵬)과 아들들의 충신문(忠臣門)이 있다. 예양리에는 양골, 미꾸지, 산속골, 강촌, 물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양곡(養谷)마을은 덕을 기르는 예양리의 중심 마을로, 인동·양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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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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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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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국내 항일 독립운동가. 장재규(張在奎)는 민적 조사와 납세 반대 등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이다. 장재규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지배 정책인 민적 조사와 납세 정책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1915년 3월 12일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의 헌병 분견소 헌병 야나기사와 도지로[柳澤藤次郞]가 민적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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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재학(張在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일제의 민적[호적] 조사와 납세 정책에 저항하여 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장재학은 일제의 민적 조사와 납세 정책에 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1915년 3월 12일 충청남도 연기 조치원(鳥致院) 헌병 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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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 장화진은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 출신으로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였다. 장화진(張和鎭)[1899~1974]은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에서 거주할 때 부친 장재학(張在學)이 일본 호적에 들어가지 않아 서울의 감옥에 들어갔다. 부친이 감옥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