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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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慶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양원(養源), 호는 만사(晩沙). 한성군 이질(李秩)의 증손자이고, 종묘서령을 지낸 이지숙(李之菽)의 손자이며, 판서 이증(李增)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시직 이몽원(李夢黿)의 딸이고, 부인은 직장 이의충(李義忠)의 딸이다. 이경황의 아들 이선(李䆄)을 양자로 삼았다.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593년 정언·지평·세자시강원필선을 역임하고, 이듬해 장령(掌令)이 되었다. 이때 정철(鄭澈)에 대한 삭직 논의가 일어나자 모두 두려워하여 말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부당성을 과감하게 상소하였다.
1603년 성주목사를 비롯하여 광주목사(光州牧使)·호조참판·경기도관찰사·병조참판에 이르렀으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1611년 특진관이 되었고, 1614년에 경주부윤이 되었다가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617년 한창군에 봉해져 지의금부사가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한성부우윤으로 총관(摠管)을 배수 받았고, 1625년에 다시 지의금부사를 지내고 호조참판을 배수 받았으나 나이가 많아 사직하였다. 대단한 호주가였다.
[묘소]
이경함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