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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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南原尹氏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종준 |
출생 시기/일시 | 1606년 - 열녀 남원 윤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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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6년 - 열녀 남원 윤씨 사망 |
출생지 | 열녀 남원 윤씨 출생지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남원 |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성남 출신의 열녀.
[개설]
열녀 남원 윤씨(烈女南原尹氏)[1606~1626]는 남편 오횡(吳 立+宏)이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자 곧이어 자결하였다.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할아버지는 판서 윤돈(尹敦)[1551~1612]이며, 아버지는 윤형준(尹衡俊)이다. 시아버지는 오백령(吳百齡)이다. 남원 윤씨 일족은 조선 후기 이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일대에서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남원 윤씨가 혼인하여 처음 시댁에 들어서자 시부모가 기뻐하면서 “아름다운 며느리이다.”라고 하였다. 함께 산 지 몇 년 만에 오횡이 병이 나자, 남원 윤씨는 밤낮으로 옷도 벗지 않은 채 지내면서 약을 자신이 직접 달이고 더러워진 옷을 직접 빨았는데, 열 달 동안을 하루처럼 하였다. 남편의 병이 위독해져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음을 알고 먼저 자결하려 했는데 가족이 구해 주었다. 남편의 상을 당해서는 음식을 끊은 채 남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제물을 올리는 일 외에는 신발을 신고 문지방 밖을 나서지 않았다. 상을 마친 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남기는 편지 두 통을 써서 봉해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편지에 후사를 잇는 일에 대해 말하였는데, 내용이 너무나 슬퍼서 듣는 사람들이 모두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남편과 동갑으로 스무 살에 둘 다 죽었다.
[상훈과 추모]
남원 윤씨는 사후에 열녀로 정려되었다. 열녀 남원 윤씨의 정려 현판은 원래 경기도 양주에 있었으나 지금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