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9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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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노현 |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석태는 장난기가 많은 아이였다. 중원초등학교, 그 당시는 중원국민학교였다. 1학년 때 장난이 워낙 심해서 짝꿍이 여섯 번 바뀌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님 말씀에, 짝꿍이 여섯 번인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초반에. 학급이 딱 배치가 되면 짝꿍을 맺어주는데 여섯 번인가 바뀌었다고. 처음에 짝꿍을 붙여줬는데 엄청 괴롭히더래요. 금 그어 놓고. 금 넘어 온 만큼 찢어버린다든지 때린다든지. 막 괴롭히더래요. 그래서 짝꿍이 하도 견디다 못해 바꿔달라고 해서 선생님께 요청을 하면 바뀌었는데. 바뀌고 바뀌어도 계속 제가 그랬었구요. 그러다가 결국에 선생님이 안 되겠다 해서 어머니를 불렀대요. 얘가 너무 짝꿍을 괴롭힌다. 근데 어머니라고 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지금도 하시는 말씀이 너 때문에 내가 학교에 불려갔다 그러셔요. 짝꿍을 왜 괴롭히냐고. 결국엔 선생님이 극단의 조치를 내린 게 뭐냐면 맨 뒷 좌석에 덩치 좀 크고 쉽게 건들기 힘들 애를 옆에 앉혀 놨는데 그 뒤로는 조용히 지냈대요. 저 1학년 때요”
원래 어린 애들이란 관심을 괴롭히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석태도 여자 짝꿍에 대한 관심을 많이 괴롭혔던 걸로 표현했던 것 같다. 여자애들 앞에서 숫기도 없고 부끄럼도 많이 타던 성격이 오히려 그렇게 짓궂은 행동으로 표출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혜롭게 해결을 못하시고 오히려 원천봉쇄를 해버리셨다는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1학년 때 선생님은 배가 많이 나오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술도 많이 드시고 수업에도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았던 분이었다. 2학년 때 선생님은 기억조차도 없다. 3, 4학년 때는 같은 분이 연속으로 담임을 맡으셨는데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 분은 한자교육을 상당히 강조를 하셨는데 방과 후에는 칠판에다 한자를 많이 적어 놓으시고 가르쳤다.
“저는 조기교육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그때를 떠올려보면 조기교육도 할 만하지 않나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때 배웠던 한자들이 정말 많이 기억이 나거든요. 엄청 험악한 분위기에서 가르쳤어요. 한자 하나 모르면 엄청 맞았어요 정말. 그 많은 학생, 한 50명 되잖아요. 다 시킬 수 없으니까 무작위로 뽑아서 읽어, 뭐야 뭐야 뭐야 했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가 걸릴지 모르니까 항상 하루에 스무 자씩 그렇게 외웠어요. 그때는 되게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지석태는 수학 과목을 좋아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수학은 싫어하는 데 3학년 때의 특별한 경험 이후로 좋아하게 됐다.
“그때가 나눗셈을 배울 땐데. 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쳐주실 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곱셈까지는 어떻게 버티겠는데 나눗셈부터 이해가 안 돼요. 하여튼 3학년 때쯤 나눗셈을, 나눗셈을 3학년 때 배우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맘때쯤 배웠던 것 같은데 그때 나눗셈을 배우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게 왜 앞에서부터 나누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때 수업시간에 멀뚱히 칠판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었죠. 아 이게 저렇게 계산이 되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수업시간에 저도 모르게 아! 하는 큰 소리로 탄성을 질렀어요. 선생님한테 혼났죠. 수업시간에 왜 소리치냐고. 그때부터 갑자기 아, 이상하게 엄청 어려운 걸 혼자 골똘히 생각해서 깨달으니까 관심이 가는 과목이 돼버렸어요. 정말 그 느낌이란 게 묘하더라구요. 뭔 말인지 통 모르겠는데 골똘히 생각하니까 알겠더라. 알았을 때의 느낌이란 건 되게 좋더라구요.”
아무리 수학이 어렵다고 하지만 스스로가 집중적으로 생각에 몰입하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걸 깨달으니까 수학이 가장 관심이 가는 과목이 됐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수학과 관련된 경시대회도 많이 나갔다. 물론 상을 탄 건 아니지만 그런 순간적인 경험이 커서도 참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