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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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谷里-丹密面-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마강열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의 돌이비, 수월, 뉘실, 신천을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동(龍谷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돌이비는 조선 시대에 개척되었으며 마을 뒤편에 나정승(羅政承)의 하마석(下馬石)이라는 비석이 있기 때문에 이를 돌아서 다녔다녔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돌이비라 불렀다 한다. 그 후 신복성이라는 선비의 효행으로 위천의 언덕에 도호정을 세우고 정자 아래는 깊은 소(沼)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도호(道湖)라고 개칭되었다. 뉘실[뉘질, 누질]은 구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에 뽕나무가 많아 누에를 많이 치고 또한 마을 뒤 산세가 누에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월[무네미]은 마을의 동쪽 들판 가운데 있는 마을로서 홍수가 나면 위천이 넘쳐 물이 마을에 들어온다 하여 무네미라 했으며, 세월이 지나 강줄기가 바뀜에 따라 하천에 제방을 쌓고는 수월(水越)이라 불렀다 한다.
[형성 및 변천]
경상북도 비안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 단곡동과 단동면 도호동·신천동과 정서면의 노연동 일부와 단북면의 묵계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1225호에 의해 용곡동을 용곡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환경]
만경산이 동으로 뻗어 양지바르고 아늑한 동향 마을을 이르고 있고 마을 앞은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으며, 위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마을 서쪽의 절벽 능선에는 가마 바위가 자리를 잡고 있다.
[현황]
용곡리는 단밀면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현재 면적은 8.6㎢이며, 총 108가구에 221명[남자 105명, 여자 116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남쪽은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과 경계를 하고,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구미시 도계면, 북쪽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리·단북면 노연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돌이비·수월·뉘실·신천이 있다.
예전에는 교통이 지극히 불편한 오지였으나 위천에 작은 교량이 가설되고 도로망이 연결되어 버스가 마을까지 다니고 있다. 단밀교에서 위천을 따라 남동쪽 구천교 사이에 용곡 1리[돌이비·수월]가 형성되고, 그 뒤쪽으로 1.5㎞ 정도 가면 용곡 2리[뉘질·신천] 마을이 있으며 위천을 따라 농경지가 있고 벼농사와 과일 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용곡리의 가마 바위는 3면이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보통 사람은 겁에 질려 올라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예로부터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녀자가 가마를 타고 와서 바위 둘레를 몰래 세 바퀴만 돌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가마 바위를 돌고 내려 올 때는 꼭 남자를 먼저 만나야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