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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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岩里 寺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39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주상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선암리 절터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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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선암리 절터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39 |
출토 유물 소장처 | 불교문화재연구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약 180㎡[건물 터]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절터.
[변천]
선암리 절터는 1977년에 발간된 『문화유적총람』에 “송인(宋寅)의 묘가 있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절을 지어 여승(女僧)만 있다가 400여 해 전에 폐사(廢寺)되었다”고 보고되면서 알려졌다. 여산 송씨(礪山宋氏) 묘역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조선 시대 중·후기에 경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산 송씨 문중의 증언에 의하면 재사(齋舍) 시설이 있던 곳이라고 하며, 구전 내용 역시 사대부가의 재사에 승려들이 수직의 소임을 맡게 되는 조선 후기 사회상과도 일치하고 있다.
[위치]
선암리 절터는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굿배미마을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 3호선에서 지방도 56호선을 따라 양주시 은현면으로 진행하면 신천을 가로지는 국담교가 나온다. 국담교를 건너 양주시 은현면 선암2리 마을회관 쪽으로 들어서서 마을 안쪽[북쪽]으로 진입하면 여산 송씨 집성촌인 굿배미마을에 이르게 된다. 마을 능선 사이의 경작지 북단 서쪽으로 1990년에 새로 단장한 여산 송씨 묘역이 확인되며, 여산 송씨 묘역 아래쪽으로 선암리 절터가 자리하고 있다. 여산 송씨 선산에서 안쪽 골짜기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9년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역에는 기단의 일부로 추정되는 치석재 2기가 남아 있으며, 판석 1기가 기단부에서부터 약 11m 떨어진 곳에 매몰되어 있다. 기단부의 석재는 장방형으로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으로, 하단 석재의 크기는 110x100x66㎝이며, 상단 석재의 크기는 104x100x50㎝이다. 판석은 67x95㎝로 일부분이 매몰되어 있어 두께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지상에 노출된 3면은 모두 거친다듬이 되어 있다. 기단석과 판석을 기준으로 추정한 건물 터의 면적은 약 180㎡로 법당 터로 추정된다.
건물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유물이 뚜렷하게 확인되지는 않으며, 능선 사이 경작지에는 기와편과 자기편이 산포되어 있다. 기와편은 두께 2㎝에 태토로 제작된 와편이 주를 이루고 있고, 자기편은 내면에 내저원경이 있고 외면에는 물레 흔적이 남아 있는 모래 받침흔 오목굽의 백자편 등이 확인되었다.
[현황]
선암리 절터는 2단으로 조성된 평지에 해당되며, 평탄지는 정면이 15m, 측면이 12m 정도 크기이다. 절터의 정면과 후면에 석축이 남아 있으며, 능선 사이 경작지에 기와편, 자기편, 토기편 등이 산재해 있다. 선암리 절터 앞쪽에는 경작지가 개간되어 있고, 위쪽으로는 민묘 3기가 조성되어 있다. 절터 아래쪽에는 중종의 셋째 딸 정순공주(貞順公主)와 혼인하여 부마가 된 송인의 묘가 있다.
[의의와 평가]
선암리 절터 일대에 여산 송씨가 조선 전기에 정착하였고, ‘능곡(陵谷)’이라는 지명 역시 여산 송씨의 묘역이 많이 조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며, 산포 유물의 편년이 조선 시대 중·후기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여산 송씨의 재사 시설 또는 그에 준하는 원찰 성격의 시설물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