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499
한자 神岩1里 山祭祀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1리
집필자 서영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1리 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9월 초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1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신암1리 산제사는 매년 음력 9월 초에 마을 북쪽의 감악산 아래에 있는 산제당에서 감악산 산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재해를 당하지 않고 풍요와 복록을 누리기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감악산 산신에게 주과와 음식으로써 치성을 드리는 신암1리 산제사는 음력 9월 1일에 제의를 지낼 날짜를 잡는데, 제일은 9월 초 중에서 길일을 택했다.

[연원 및 변천]

신암1리 산신제는 감악산의 산신을 대상으로 오랜 세월 마을에서 치러온 산신 숭배 신앙의 하나이다. 원래 음력 9월 3일에 산신제를 지내 오다가 1960~1970년대 이후에는 매년 9월 초로 바뀌었다. 9월 초에 지내되 적당한 날짜를 택하여 제사를 올렸으며, 통상 제일은 9월 초하룻날에 마을 주민이 의논하여 정했다.

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북쪽의 감악산에 있는 산제당이다. 신암리 잣뜸을 지나 감악산 방향으로 가면 신암저수지가 나오는데, 이 저수지를 지나기 전에 왼쪽으로 냇가를 따라 들어가면 산제당에 이르게 된다. 산제당은 신암1리에 있지만 산제사는 신암1리와 신암2리 사람들이 함께 지냈다. 원래 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감악산 아래 신암1리에는 지금도 각종 굿당을 비롯하여 치성을 드리는 곳이 여기저기에 있다. 경기도 양주시 남면 일대에서는 감악산을 영산(靈山)으로 여겨 오고 있고, 감악산에는 각종 서낭당이나 산신 등을 믿는 마을 신앙이 남아 있다. 산신을 숭배하는 각종 믿음들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포함하여 여러 기록에도 감악산을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약 40여 년 전인 1970년대에 새로 세운 산제당이 있어 이곳에서 산제를 지냈다. 그 이전에는 돌담에 서까래를 얹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덮은 초가집이었는데 6·25 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그 이유로 한때 산제를 중단하였으나 휴전 이후 산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했고, 1962년경에 산제당을 새로 지었다. 지금의 산제당은 시멘트 벽돌로 쌓아 올리고 겉에는 시멘트를 바른 다음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물로서 방 한 칸과 헛간 한 칸으로 이루어졌다. 뒤쪽에 조그만 창문이 하나 있는 산제당의 크기는 앞면 600㎝, 옆면 240㎝, 높이 285㎝이다.

[절차]

산신제 날짜가 정해지면 제관, 축관, 화주를 정한다. 마을에서 성실하고 믿을만하며 복과 덕이 있는 사람을 택하여 산신제를 맡기는 것이다. 산제를 주관하는 사람은 제관 3명[초헌관 1명, 아헌관 1명, 종헌관 1명], 화주 3명이며 축관은 제관 중 한 사람이 맡는다. 예전에는 제관과 화주로 선정되면 집 대문에 금줄을 쳤으나 지금은 생략한다. 다만 제관들이 집에서 근신을 하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이다. 음력 9월 1일에 산제 날짜가 정해지면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며, 마을 사람도 마을 밖으로 나가면 제가 끝나야 들어올 수 있다. 제관과 화주들은 초상집에 갈 수도 없고 비린 것을 먹어서도 안 된다.

제일이 결정되면 맨 먼저 술을 담근다. 화주는 직접 신산리장에 나가 제물을 직접 장만한다. 소머리 1개, 배, 사과, 밤, 통북어 3마리, 노궤 3그릇, 조라술 등의 제물은 제일 전날부터 당일까지 준비한다. 예전에는 소 한 마리를 잡아 산제에 썼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소머리를 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소머리는 하루 밤을 삶아 다음날 밤 자정 이후의 제사에 쓴다. 제물을 구입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드는 비용은 마을 기금에서 충당한다.

산신제가 있는 날 아침 일찍 제관 3명과 화주 3명은 산제당으로 올라간다. 이들은 일단 산에 올라가면 제사가 끝날 때까지 산을 내려올 수 없으므로 산제당에서 직접 점심과 저녁을 해 먹는다. 이들 외에는 아무도 산제당에 올라갈 수 없다. 저녁을 먹은 다음 해가 지면 떡과 메를 짓는다. 노구메[3되 3홉]와 백설기는 산에서 직접 지어 올리며, 산제는 자정을 넘어 지낸다.

제물을 진설하고 잔을 부은 다음 강신, 재배, 독축, 재배, 소지, 음복, 고수레, 하산 등의 순서로 제례가 진행된다. 소지는 대동 소지 외에 제의에 참석한 여섯 사람의 소지만을 올린다. 고수레를 할 때는 한지에 제물을 조금씩 싸서 7군데에 가져다 놓는다. 이렇게 하여 모든 제의가 끝나면 산에서 날을 샌 다음 새벽 해뜨기 전에 마을로 내려온다.

[축문]

다른 마을과는 달리 신암1리 산신제의 축문은 의외로 간단하다. 감악산 산신은 창생(蒼生)을 자애롭게 여기시어 재해를 없애 주고 복록을 늘려달라고 빈다. 이를 위해 신을 달래려 마을 사람들이 목욕재계하고 주과와 희생(犧牲)을 드린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간지 구월 간지 삭 초 ○일 간지 유학 ○○○등 감소고우 감악지신 업아산령 자애창생 제기재해 증기복록 동민재결 주과희생 상향(惟歲次 干支 九月 干支 朔 初 ○日 干支 幼學 ○○○等 敢昭告于 紺岳之神 嶪我山靈 慈愛蒼生 除其災害 增其福祿 洞民齋潔 酒果犧牲 尙饗).”

[부대 행사]

제의가 끝나면 해가 뜨기 전에 마을로 내려와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 이때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소도복’이라 하여 제물을 한지에 조금씩 싸서 나누어 드리고, 제관이나 화주들에게도 제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다.

[현황]

산제사의 형식은 1980~1990년대 많이 간소화하거나 생략되었으며, 산제사 의례도 거르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2011년 현재 거의 산제사를 치르지 않고 있으며, 이 지역 무속인이 개인적으로 산제사를 드리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